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전파진흥원)이 옵티머스자산운용(옵티머스)에 수백억원대 펀드 투자를 할 당시, 전파진흥원 실무자가 공공기관 매출채권 관련 자료를 요구했으나 ‘윗분과 상의한 것’이라며 거부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당시 옵티머스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핵심인물로 꼽히는 정영제 옵티머스 대체투자부문 대표의 허락이 있어야만 자료를 줄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공공기관인 전파진흥원이 670억원을 졸속투자하는 과정에 정 대표 등의 로비가 있었는지 수사하고 있다.
15일 <한겨레>가 확보한 통화 내용 녹음파일을 들어보면, 전파진흥원의 ㄱ과장은 2017년 6월15일 에스크베리타스자산운용(옵티머스의 전신) ㄴ팀장과 통화를 나눈다. ㄱ과장은 ㄴ팀장에게 “편입자산에 엘에이치(LH)공사 매출채권이 편입되어 있지 않나. 이게 지금 매출채권 종목 단위 하나로 갖고 있는 건가, 아니면 유동화로 갖고 있는 건 아닌 건가”라며 “이런 매출채권을 저희가 실질적으로 처음 보는 자산”이라고 말했다. 전파진흥원은 2017년 5월부터 2018년 3월 사이에 670억원을 투자하는데, 이 돈을 옵티머스는 엘에이치공사·한국도로공사 등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상태였다. 투자가 이미 결정된 시점에서 매출채권의 성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제대로 된 검토 없이 투자가 진행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ㄱ과장은 “(매출채권이) 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하나도 모른다”며 관련 자료를 요구했지만 ㄴ팀장은 “윗분과 우리 대체투자본부 대표와 상의하신 것 같다”고 답했다. 실무진을 건너뛰고 정영제 옵티머스 대체투자부문 대표와 전파진흥원 ‘윗선’ 간에 논의가 끝난 상황이라는 얘기다. ㄱ과장이 “윗분 얘기는 얘기고, 우선 우리도 내용을 알아야 한다”고 채근했지만 ㄴ팀장은 “그 부분을 (정영제) 대표에게 요청해야 드릴 수 있다. 먼저 물어보고 대표가 우리한테 지시하면 보내줄 수 있다”고 말한다. ㄱ과장은 이후에도 관련 자료를 끈질기게 요구하지만, ㄴ팀장은 “내부 결재라인이 있어서 마음대로 말씀 못 드린다”며 자료 요청을 끝내 거부했다.
옵티머스에 넘어간 자금은 우량 공기업 매출채권이 아닌 엠지비(MGB)파트너스 등 비우량 회사의 채권을 거쳐, 성지건설 인수자금으로 쓰였다. 공공자금이 옵티머스 펀드를 통해 무자본 인수합병에 활용된 셈이다. 과기부는 2018년 감사에 착수해 전파진흥원의 돈이 옵티머스를 통해 부적격 회사로 흘러간 사실을 확인한 뒤 2018년 10월 옵티머스와 판매사 대신증권, 성지건설 등을 검찰에 고발한다. 이때는 이미 옵티머스가 공공기관인 전파진흥원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얻어낸 실적을 발판으로 사세를 키운 뒤였다.
검찰은 수사가 본격화된 뒤 잠적한 정영제 대표가 전파진흥원의 당시 최아무개 기금운영본부장을 상대로 매달 금품을 제공하거나 국외여행을 함께 다녀오는 등 로비를 벌였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전 본부장은 ‘여행경비 중 자신의 경비는 직접 지불했고, 금전 거래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15일 서석진 전 전파진흥원 원장과 최 전 본부장을 오는 22일 열리는 과기부 종합감사의 참고인으로 채택했다. 김정필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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