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민원인에게 장기간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아파트 관리소장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는 아파트 관리 업무를 보다가 숨진 ㄱ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8일 밝혔다.
2011년 5월부터 경상남도 양산시의 한 임대아파트 관리소장으로 근무했던 ㄱ씨는 2017년 7월 회사 대표에게 “몸이 힘들어서 내일부터 출근하기 힘들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이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ㄱ씨의 배우자는 ㄱ씨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라고 주장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ㄱ씨 개인의 경제적 문제와 정신적 취약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며 유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악성 민원인이었던 ㄴ씨가 층간소음을 이유로 약 1년8개월 동안 관리사무소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해온 점에 주목했다. 그는 수시로 관리사무소에 방문하거나 전화를 걸었고, 근무시간이 아닌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도 ㄱ씨의 개인 휴대전화로 연락해 민원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민원 내용은 주로 층간소음 문제에 관한 것이어서 ㄱ씨로서도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ㄴ씨는 아파트를 관리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도 직접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며 “ㄱ씨 입장에서 이러한 민원의 존재는 상당한 부담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ㄱ씨가 일을 관두겠다고 말했던 당일에도 ㄴ씨가 민원을 냈고, 이는 ㄱ씨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고 판단했다. 당시 ㄴ씨는 1시간 동안 공개된 장소에서 ㄱ씨에게 일방적으로 질책과 폭언을 했던 것이다. 이에 재판부는 “ㄴ씨가 ㄱ씨보다 나이가 10살 어린 점, ㄱ씨 잘못이 아닌 엘에이치의 업무처리에 관한 문제를 ㄱ씨에게 항의한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은 ㄱ씨에게 극심한 스트레스와 자괴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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