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경륜선수노조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 설립신고증 교부를 촉구하고 있다. 경륜선수노조 제공
228만원. 18년차 프로 경륜 선수인 김아무개(41)씨가 지난 2월부터 본업인 선수생활로 번 돈 전부다. 두차례 열린 무관중 시범경기에 참가해 겨우 수입 ‘0원’은 면했지만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일반 시합은 단 한번도 열리지 않았다.
경륜 선수 중에서도 상위권인 그이지만 자연스레 생계 수단이 사라졌다. 건설 일용직과 대리운전 등 ‘투잡’을 뛰어 겨우 생계를 이어왔다. “훈련 대신 일주일 내내 건설 현장에서 보낼 때는 프로 선수라는 정체성까지 헷갈린다”고 김씨는 말했다. 선수들의 생계유지를 위해 출범한다는 ‘경륜노조’ 설립에 참여해 국민체육진흥공단에 목소리를 내려 했지만 이 역시 200일 넘게 감감무소식이다. 그사이 선수들은 줄줄이 은퇴를 감행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경기가 중단돼 경륜 선수들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일부 선수들이 노조를 설립하려 모였지만 설립이 지연된데다 사쪽에 해당하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사무실 퇴거 소송까지 벌여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경기에 참가하고 소득을 얻는 경륜 선수들은 ‘특수고용노동자’ 성격을 띠고 있다. 이들은 소득의존성과 지휘·감독체계에 따른 종속성 등 ‘노동자성’이 명백한데도 사쪽과 고용노동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19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코로나19로 경륜 경기가 안 열리자 수입 전체를 경기에서 나오는 상금과 출전수당에 의존하는 경륜 선수들의 생계유지 수단 또한 사라졌다. 생계도 꾸리기 힘든 이들을 더 지치게 만드는 건 ‘기약 없는 노조 설립’이다. 지난 3월30일 노조 설립을 신고하고 벌써 200일이 넘게 흘렀다. 그러나 아직까지 노조 설립필증 교부 소식은 없다. 경륜노조 설립신고서를 받은 고용노동부 안양지청 관계자는 “전속성과 지휘감독권 등을 따져 선수들이 노조법상 근로자에 확인되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빠른 시일 안에 결론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그사이 이들은 기존 협회 사무실에서도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광명스피돔에 있는 경륜선수협회 사무실이다. 경륜노조 관계자들은 노조 설립 준비를 위해 지난해부터 같은 사무실에서 업무를 봤으나, 사쪽인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지난해 11월 사무실 계약 해지를 통보하며 사무실에서 나가라고 했다. 지난 5월에는 서울동부지검에 퇴거 청구 소송도 냈다. 소송에서 노조가 지면 노조 설립신고증 교부가 더 늦어질 수 있다.
이경태 경륜선수노조 위원장은 “사무실 사용에 대해 임대료까지 낸다고 했지만 공단 쪽은 무작정 퇴거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노조 설립에 대한 공단의 보복성 소송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 관계자는 “경륜 선수는 개인사업자로 보고 있다. 다만 무이자 대출 등 선수들의 생계 지원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왔으며 협회 사무실 계약을 해지한 것은 여러 선수 중 일부만 사무실을 쓰고 있어 형평성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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