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사회적 약자, 소수자, 인권침해피해자, 활동가를 지원해왔던 녹생병원이 21일 서울 종로5가 전태일 다리에서 전태일병원 선언을 하고 있다. 녹색병원의 전태일병원 선언은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어린 여공을 돕기 위해 기꺼이 나섰던 전태일의 정신을 이어받아, 녹색병원이 비정규, 영세사업장 노동자, 특고노동자 등 취약직종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을 위한 안전망병원으로서 기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선언이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98일. 도명화 민주일반연맹 톨게이트 지부장이 지난해 한국도로공사에 ‘전원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조합원들과 경기 성남시 서울요금소의 10m 높이 캐노피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인 기간이다. ‘하늘 감옥’에 유일하게 방문할 수 있던 외부인은 녹색병원 의사들이다. 의사들은 일주일에 한차례 3~4시간씩 머물며 오랜 농성으로 피부병과 근골격질환에 시달리던 조합원들을 진료했다. 21일 <한겨레>와 만난 도 지부장은 “정신적 고통까지 의사들이 어루만져줬다”고 돌이켰다. “투쟁에 이겨도 상처는 있어요. 외로움과 고독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거든요. 모두 일주일 내내 의사 선생님만 기다렸어요. 그분들 도움이 없었으면 못 버텼을 거예요.”
도 지부장처럼 오랜 농성과 투쟁으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이들을 돌보기 위해 ‘인권치유119’가 출범한다. 전태일 열사 분신 50주기를 맞아 오늘의 ‘전태일들’을 돌본다는 취지다. 녹색병원과 인권의학연구소, 심리치유네트워크 ‘통통톡’ 등 기관·단체들은 이날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 소수자, 인권침해 피해자와 현장지원 활동가들의 건강과 마음을 돌보는 전국네트워크 인권치유119 출범 소식을 알렸다.
녹색병원은 2017년 인권치유센터를 열고 기업폭력과 국가폭력 등으로 단식 고공농성을 하거나 장기투쟁하는 이들의 현장을 방문해 건강을 챙겨왔다. 인권치유119는 한국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의 참여로 이런 지원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통통톡의 참여로 노조와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마음 건강도 챙긴다. 인권의학연구소는 연구·조사활동을 맡고 정책을 제안할 예정이다. 군인권센터, 노동건강연대, 민주노총, ‘인권재단 사람’도 협력단체로 함께한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기자회견에서 “단식농성을 할 때마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분들에게서 도움을 받았다. 인권치유119 출범으로 사회적 약자까지 치유할 수 있다니 고마울 따름이다”라며 “몸과 마음이 상했던 사람들이 건강하게 현장 속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고건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모임’ 대표도 “쿠팡발 코로나19에 감염된 이들은 주변에서 인간 바이러스 취급을 받았지만 정부나 사쪽은 이런 아픔에 관심이 없었다. 통통톡의 상담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앞으로도 많은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가 이 프로그램을 경험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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