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라임 사건 의혹을 수사 중인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이 22일 “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렸다. 이제 검사직을 내려놓으려 한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박 지검장은 “검찰총장 가족 등 관련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는, 그 사건 선정 경위와 그간 서울중앙지검의 위 수사에 대하여 검찰총장이 스스로 회피하여왔다는 점에서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도 비판했다. 추 장관은 이날 “유감스럽다”며 후속 인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사의를 밝힌 박 지검장의 글은 이날 국회에서 대검찰청 국정감사가 열리기 직전인 오전 9시55분 검찰 내부게시판에 올라왔다. 박 지검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1조5000억 상당의 피해를 준 라임사태와 관련하여 김○○(봉현)은 1000억원대의 횡령·사기 등 범행으로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는 것이 그 본질이고 로비 사건은 그 과정의 일부”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감사를 앞두고 김○○(봉현)의 2차례에 걸친 입장문 발표로, 그간 라임 수사에 대한 불신과 의혹이 가중되고 있고 나아가 국민들로부터 검찰 불신으로까지 이어지는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적었다.
박 지검장은 또 윤 총장의 지휘권 박탈로 이어진 라임 관련 수사 무마 의혹도 반박했다. 박 지검장은 “검사 비리는 이번 김봉현의 입장문 발표를 통해 처음 알았기 때문에 대검에 보고 자체가 없었고, 야당 정치인 비리 수사 부분은 5월경 전임 서울남부검사장이 격주마다 열리는 정기 면담에서 면담보고서를 작성하여 검찰총장께 보고하였고, 그 이후 수사가 상당히 진척되었으며, 8. 31. 그간의 수사 상황을 신임 반부패부장 등 대검에 보고하였다”며 “저를 비롯한 전·현 수사팀도 당연히 수사를 해왔고 그렇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의혹은 있을 수가 없다”고 밝혔다. 박 지검장은 “검찰총장 지휘 배제의 주요 의혹들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고 적었다.
의정부지검장 시절 윤 총장 장모를 사문서 위조 혐의로 기소했던 박 지검장은 “의정부지검 수사팀은 정치적 고려 없이 잔고증명서의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를 선택하였고 기소했다. 그 이후 언론 등에서 제가 누구 편이라고 보도되고 있다”고 적었다. 박 지검장은 “검찰총장 가족 등 관련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는, 그 사건 선정 경위와 그간 서울중앙지검의 수사에 대하여 검찰총장이 스스로 회피하여왔다는 점에서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며 라임 사건과 함께 윤 총장 가족 사건을 수사지휘권 발동에 끼워넣은 추 장관을 비판했다. 박 지검장의 사의 표명 글에 검사들은 “안타깝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다” “용기와 결기에 감사드린다”는 댓글을 달았다.
추미애 장관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라임 관련 사건을 엄정하고 신속하게 수사해야 할 중대한 시기에 상급기관과 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된 철저한 수사에 관한 책무와 권한을 부여받은 검사장이 사의를 표명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태규 김정필 기자
dokb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