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마음껏 누리십시오. 저는 먼저 갑니다.” 김재규 장군이 내란죄로 사형 판결을 받은 지 나흘 만에 교수대에 오르며 남긴 말이다. 그에게 1979년 10월26일은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저격한 날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최소한의 희생’을 선택한 날이었다. 그는 군사재판 최후진술에서도 서른번이나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했다. 그러나 그가 바란 자유민주주의는 80년 광주항쟁과 87년 6월항쟁을 치른 뒤에야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그의 바람은 여전히 미완의 상태임을 경기도 광주에 있는 그의 무덤에서 알 수 있다. 무덤 옆에는 전남·광주 민주인사 모임인 송죽회에서 1989년에 세운 추모비가 있다. ‘의사 김재규 장군 추모비’에서 ‘의사’ ‘장군’ 네글자가 정으로 쪼아낸 듯 훼손된 채다.
경기도 광주/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