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6개월 입양아 학대 치사 혐의를 받는 엄마 ㄱ씨가 11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첫돌이 채 지나지 않은 영아를 입양한 뒤 모질게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엄마가 지난 11일 구속된 사건은 아동학대의 사회적 책임을 다시 한번 환기한다. 정부가 2018년, 2019년 대책을 잇따라 내놓았지만 아동학대를 막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 현장 담당자들이 아동학대를 민감하게 인지하고 분별 있게 처리할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 ㄱ양이 숨지기 전까지 아동학대 정황을 알리는 신호는 여러 차례 있었다.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어린이집 교사와 소아과 의사 등은 ㄱ양에 대한 아동학대를 의심해 세차례 경찰 등에 신고했다. 그때마다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조사에 나섰지만 혐의를 찾지 못했다. ㄱ양은 지난달 13일 서울 양천구의 한 병원에서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경찰이 아동학대 혐의를 발견한 건 ㄱ양이 숨진 뒤였다. 경찰의 부실 대응 논란이 일자 서울지방경찰청은 신고 처리에 대한 감찰을 하는 등 여전히 ‘뒷북’ 대책을 반복하고 있다.
엄마 ㄴ씨는 올해 초 ㄱ양을 입양했다. 학대 정황은 입양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났다. 5월 ㄱ양이 다니는 어린이집 교사는 ㄱ양의 몸에서 멍 자국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ㄱ양이 학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첫번째 기회였다. 경찰은 당시 ㄱ양의 부모를 불러 조사를 진행했지만 ㄴ씨는 “다리 마사지를 해줬다”고 변명했고, 경찰은 내사 종결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상적인 실수로 멍이 든 건지 때려서 반상출혈이 일어난 건지 상태와 위치 등을 확인해보면 판단이 가능한데 전문 지식이 부족해 판단이 안 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두번째 신고는 6월에 있었다. ㄴ씨의 지인들은 ㄱ양이 차 안에 혼자 3시간가량 방치된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해당 신고 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으나 혐의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ㄴ씨는 “차에 아기를 혼자 두는 등 방치한 사실은 있지만 폭행한 적은 없다”고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사람들이 물리적인 학대나 정서적인 학대만 심각하고 방임은 사소하게 생각하지만 방임 또한 심각한 학대”라며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자체가 높지 않아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문제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아동복지법에서도 방임을 신체적·정신적 폭력과 더불어 아동학대로 규정한다.
마지막 신고는 ㄱ양이 숨지기 한달 전인 9월에 있었다. ㄱ양의 체중이 4개월 새 1㎏가량 줄어 이를 이상하게 여긴 어린이집 교사가 부모 몰래 소아과에 데려갔다. 소아과 의사는 학대로 인한 영양실조를 의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현장 조사를 나가고 의사 면담을 거쳤지만 아동학대로 단정하기 어려워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사례 관리를 하는 식으로 종결 처리했다. 정 교수는 “영아의 체중 감소는 치명적인 문제인데 이조차 넘어간 건 심각한 문제”라며 “아동학대의 신호가 점점 커지고 있는데 이를 인지하지 못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사건 담당자들의 전문성을 높이고 아동 학대범죄 특례법 규정대로 아동학대 발생 시 행위자와 격리, 피해 아동 보호시설 인도 등 법안 취지대로 적극적인 집행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학대 의심 부모와 아동을) 분리하는 등 ‘현장 임시조치’를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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