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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조용한 학살’, 20대 여성들은 왜 점점 더 많이 목숨을 끊나

등록 2020-11-13 17:37수정 2020-12-02 11:20

20대 여성 자살률 급등…증가폭 타세대·성별 상회
젊은 여성 고용위기 침묵이 ‘조용한 학살’ 불러
“여성을 노동시장 참여자로 만들어야 감소 도움”
젠더 미디어 <슬랩> ‘조용한 학살이 다시 시작됐다’ 영상 갈무리
젠더 미디어 <슬랩> ‘조용한 학살이 다시 시작됐다’ 영상 갈무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20대 여성들이 유례없이 늘고 있다.

지난해 20대 여성의 자살률은 전년 대비 25.5% 늘었고, 올 1∼8월 자살을 시도하는 20대 여성은 전체 자살시도자의 32.1%로 전 세대 통틀어 가장 많았다. 여전히 전체 자살률을 놓고 보면 남성 자살률이 여성보다 2∼3배가량 높지만, 20대 여성 자살률의 증가 폭은 다른 세대와 성별을 훨씬 상회한다.

젠더 미디어 <슬랩>이 12일 공개한 “‘조용한 학살’이 다시 시작됐다”는 왜 ‘90년대생 여성’들이 목숨을 끊고 있는지 묻고, 우리 사회가 ‘조용한 학살’에 대답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슬랩 유튜브 바로가기 https://bit.ly/3pq8Jg0

<슬랩> 인터뷰에 응한 장숙랑 중앙대학교 교수(간호대학)는 2019년 발표한 자신의 연구결과(청년 여성의 자살문제)를 바탕으로 20∼30대 여성 자살률이 앞선 세대의 여성들이 20대 때 보였던 자살률에 비해 유난히 높은 점에 주목했다.

“(일본의) 제국주의 때 전쟁에 참전했던 세대들, 패망한 국가를 견뎌야 했던 청년들, 그 청년들이 계속해서 우울증에 시달렸고 (생애 내내) 높은 자살사망률을 보였어요. 그걸 우리는 코호트 효과(특정한 행동양식을 공유하는 인구집단)라고 불러요.”

장 교수는 덧붙인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출생)코호트 효과가 똑같이 있나 봤는데 20, 30대 청년이었습니다.”

1951년생 여성이 스무살일 때 자살사망률을 1로 본다면, 1986년생이 스무살일 때의 자살사망률은 1951년생에 비해 6배 높고, 1997년생은 약 7배 높다는 것이 장 교수의 연구 결과다.

“90년대생 중에서도 90년대 후반생으로 갈수록 더 자살사망률이 높아졌는데, 80년대생의 엄마 세대인 1950년대생과 비교했을 때 80년대생이 거의 5배 정도, 90년대생은 거의 7배 정도의 차이가 났어요. 결과적으로 엄마들보다 딸들이 20대에 자살을 선택할 그런 삶의 조건이라는 것이 5배 증가했다는 거잖아요.”

2차 세계대전의 트라우마로 다른 세대에 비해 유난히 자살률이 높았던 일본 전후세대(1902∼1920년생)처럼, 오늘날 한국의 젊은 청년들, 특히 20대 여성들의 자살률이 다른 세대 여성의 젊은 시절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높다는 것이다.

한국·일본 남녀의 출생연도별 자살의 비례사망률. 연령 및 기간 효과를 보정한 수치로 기준은 1951년생을 기준으로 한 비례사망률임. 장숙랑 중앙대 교수 제공
한국·일본 남녀의 출생연도별 자살의 비례사망률. 연령 및 기간 효과를 보정한 수치로 기준은 1951년생을 기준으로 한 비례사망률임. 장숙랑 중앙대 교수 제공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자문위원은 20대 여성 자살률 급등 원인을 이렇게 분석한다.

“우리 사회에서 핵심 인력은 남성 노동자가 하고 여성은 보조 인력으로 필요할 때 일하고 불필요하면 언제든지 빼도 되는 잉여인력처럼 활용됐던 거잖아요. 그러니까 여성들이 주로 서비스 업종에 있게 되고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서비스 업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으니까 20대 여성도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거죠.”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분석한 9월 여성 고용 동향 자료에 따르면, 여성실업률은 3.4%로 전년 같은 달보다 0.6% 늘었고, 그중 20대 여성의 실업률은 7.6%로 가장 높았다.

임 자문위원은 노동시장에서 취약한 지위에 있는 젊은 여성들의 실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침묵이 ‘조용한 학살’을 부른다고 말한다.

“3월달에만 20대 여성 12만명이 일자리를 잃었어요. 압도적으로. 그런데 조용하더라구요. 이렇게 ‘조용한 학살’이 다시 또 반복되는 (것인데) 우리 사회가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이 저는 굉장히 가부장적인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혜주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는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인정받는지 여부가 자살률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보다 8%가 더 높은 상황이잖아요. 이 부분이 노동시장에서의 지위를 포함한 사회적인 지위로 이전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한국의 여성은 딱 그 위치에 있거든요.”

정 교수는 유럽의 사례를 든다. “결국 (유럽에서) 청년 자살에 제일 영향을 크게 미치는 인자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에요. 여성이 ‘가정 내 여성’으로 고려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고려되고, 같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힘을 모으는 ‘노동시장의 참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이 유럽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남녀 자살률 감소에 도움이 됩니다.”

젠더 미디어 &lt;슬랩&gt; ‘조용한 학살이 다시 시작됐다’ 영상 갈무리
젠더 미디어 <슬랩> ‘조용한 학살이 다시 시작됐다’ 영상 갈무리

정 교수는 ‘가족 정책에 대한 지원이 많을수록 젊은 여성의 자살률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유럽의 연구결과도 제시한다.

“이게 되게 놀라운데 아동수당 이런 거 다 포함돼서 가족이 잘 유지돼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책들인데, 이게 사실 가족을 형성할 생각이 없거나 형성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죠.”

’가족 중심’으로 설계된 정책적 지원들이 노동시장에서 독립된 개인으로서 살고자 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가닿지 않고, 이런 여성들을 지원책에서 배제시켜 오히려 자살률을 높이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달 31일 펴낸 ‘청년세대 생애전망에서의 남녀차이, 저출산의 근본원인’도 비슷한 견해를 제시한다.

“청년들은 더이상 결혼제도가 전 생애 생존의 바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청년여성들은 전 생애에 걸쳐 노동중심적 생애를 유지하는 것을 절박하게 선택하고 있다.”

결혼과 출산을 전제로 한 지원 정책은 자신의 직업과 커리어를 중심으로 삶을 설계하는 ‘개인’인 청년 여성들과는 괴리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슬랩>의 유튜브 영상에는 ‘공감하고 마음이 아프다’는 취지의 댓글이 200여개 달렸다.

“90년대생으로서 내 또래들이 같은 괴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

“일자리도 일자리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어릴 때부터 겪은 여성혐오적 문화와 차별이 하나둘 쌓이면서 무기력을 학습하고 컸는데 노동시장에 크게 좌절해 자살로 이어지는 것 같다.”

“동년배들이 죽고 싶지 않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바라지만 않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노력하겠습니다. 이 영상을 본 여러분도 그래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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