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를 써 그린 그림(샌드아트). 어른의 학대로 마음이 시들고 영혼이 죽어가는 아이를 묘사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제공
“병원에서 수사 경찰에게 학대 피해 아동의 치료비를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봐서 당황했습니다.”
무국적·미등록 체류 아동 ㄱ(3)군을 학대한 혐의를 받는 베트남 국적의 엄마(26)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 하남경찰서 관계자는 17일 <한겨레>에 피해 아동 보호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털어놨다. 온몸에 멍이 들고 일부 장기가 파열된 것으로 알려진 ㄱ군은 현재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이 관계자는 “ㄱ군에게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이 경찰에는 없어 학대예방경찰관(APO)이 지자체와 관련 기관에 연락해 대책을 찾아야 했다”며 “무국적 범죄 피해 아동의 경우에는 의료지원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이는 불법체류 부모의 자녀인 무국적·미등록 체류 아동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최근 학대 피해 아동 보호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학대를 당한 무국적·미등록 체류 아동을 보호할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ㄱ군은 다행히 치료를 담당한 아주대병원에서 치료비를 전액 지불하기로 했다. 하남시청 관계자는 “ㄱ군은 2주 정도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을 예정인데 치료비는 병원에서, 간병비는 시에서 지원하기로 했다”며 “퇴원 후에는 경기남부 아동일시보호소에 맡겨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ㄱ군은 퇴원한 뒤에도 계속해서 심리치료, 예방접종 등 의료기관의 진료가 필요한데 현행 체계로는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아동일시보호소에서 최장 6개월만 머물 수 있다. ㄱ군을 장기 보호할 기관을 찾고 있는 경기도 성남의 한 아동보호기관 관계자는 “ㄱ군은 출생신고가 안 돼 보건의료 서비스를 전혀 받지 못해 선뜻 돌보겠다고 나서는 기관을 찾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한겨레> 취재 결과 지난해 초 경기도에서 ㄱ군처럼 무국적·미등록 체류 아동에 대한 학대 사건이 있었는데 해당 아동은 부모와 분리된 뒤 1년이 지나도록 적당한 보호기관을 찾지 못해 떠돌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과 하남시는 ㄱ군의 모국인 베트남 쪽에 출생신고를 하고 외국인 등록을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절차가 까다롭다. 출생신고를 해야 할 ㄱ군의 엄마가 지난 15일 아동학대 혐의로 구속됐기 때문이다.
경기도 한 이주민 인권센터 관계자는 “무국적·미등록 체류 아동이어도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되면 의료 지원도 받을 수 있는데 학대 피해 역시 비슷한 수준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