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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38년 만의 안식

등록 2020-11-20 19:32수정 2020-11-27 19:27

[토요판] 한 장의 다큐

연세대생 정성희. 1학년이던 1981년 11월 학내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연행된 지 사흘 만에 강제로 군대에 끌려갔다. 부대생활 중에도 그는 보안부대의 끊임없는 감시와 조사를 받으며 사상개조와 학원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았다. 강제징집 8개월 만인 1982년 7월 정성희는 전방 철책초소에서 야간근무 중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군 당국은 독실한 모태신앙인인 그의 죽음이 자살이라며 서둘러 화장한 뒤 유골마저 가족에게 전하지 않고 화장터에 뿌려버렸다. 그로부터 38년, 긴 세월 한 뼘 묘지도 없이 떠돌던 그의 혼이 지난 14일 경기도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 안장됐다. 유골이 흩뿌려졌던 화장터의 한 줌 흙과 생전에 그가 지녔던 몇 가지 유품들이 그의 묘지에 묻혔다. 마흔넷에 잃은 아들을 여든이 넘어서야 떠나보내는 정낙헌(82)씨가 아들의 무덤에 흙을 덮어주고 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 따르면, 1980년 9월 전두환 군사정부 출범과 함께 강제징집이 시작됐다. 1984년 11월까지 1152명의 학생운동 참여자들이 군대로 끌려갔다. 한쪽 눈이 안 보이거나 소아마비 장애가 있던 학생도 잡혀갔다. 또 당시 보안사령부는 개개인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며 녹화사업을 강행했다. 강제징집자 921명과 일반입대자, 민간인 등 1192명에게 구타와 고문을 가하며 활동 자술서와 반성문을 쓰게 하는 사상개조 작업을 벌였다. 특별휴가를 보내 동료, 선후배의 동향을 파악해 보고하도록 하는 학원프락치 활동도 강요했다. 4년2개월 동안 계속된 독재정권의 국가폭력에 정성희와 고려대 김두황, 성균관대 이윤성, 동국대 최온순, 한양대 한영현, 서울대 한희철 등 여섯 젊은이가 목숨을 빼앗겼다.

이천/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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