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유재수 감찰무마 사건’ 재판이 20일 마무리됐다. 지난해 12월 검찰의 기소 뒤 약 1년 만이다. 조 전 수석은 이날 법원에 도착해 “오늘로 저에게 검찰이 덧씌우는 여러 혐의 중 유재수 사건은 마무리가 됐다. 그렇지만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길이 멀다. 터널의 중간 정도까지 온 것 같다. 앞으로도 지치지 않고 사실과 법리에 따라 다투겠다”고 말한 뒤 법정을 향했다.
검찰 “김학의 사건 때 박수친 사람들 조국 사건에서 비난”
이날 재판은 채택된 증거를 다시 되짚는 서증조사와 함께 검찰과 변호인이 이번 사건에 대한 마지막 정리된 입장을 밝히는 것으로 모든 절차가 끝났다. 재판을 마무리하려던 찰나, 감찰 사건 수사부터 공소유지까지 책임졌던 이정섭 수원지검 부장검사가 소회를 밝힐 기회를 재판부에 청했다. 이 부장검사에게는 이날이 조국 사건 마지막 재판이었다. 그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재수사 건을 언급하면서 운을 뗐다.
“(감찰 사건) 수사팀 4명이 직전에 한 사건이 김학의 전 차관 재수사였다. 그 사건(김학의 사건)이나 이 사건(조국 사건)이나 똑같이 과거에 발생했던 객관적 실체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느냐만 고민했다. 수사 난이도상 김학의 건이 좀 더 어려웠다. (하지만) 똑같이 수사했는데 김학의 사건 수사를 할 때 박수치던 분들 중에도 조국 사건을 수사할 때 비난한 분이 있다. (수사팀) 구성원도 바뀐 것이 없고, 성향도 같은데 왜 그런 비난을 받는지 의아했다.”
지난 재판 과정에서 이 부장검사는 조 전 수석 사건 수사의 ‘정당성’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이를 강하게 반박했다. 앞서 재판장인 김미리 부장판사가 “(이 사건은) 검찰 개혁을 시도한 피고인에 대한 검찰의 반격이라 보는 일부 시각이 존재한다”고 했을 때도 이 부장검사는 사건 수사 경위와 과정을 밝히며 “수사에서 검찰의 정치적 목적은 개입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그의 마지막 소회에는 유재수 감찰무마 사건을 바라보는 검찰의 시각이 배어있었다.
“(감찰무마 사건) 관계인 중에 어떤 분이 ‘피·아(내 편과 상대편)’라는 개념을 썼다. 이 사건은 피·아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피·아는 전쟁이나 정치 영역에서는 존재할 수 있지만 형사사건 영역에서는 상정하기 어렵다. 수사 대상에 대한 ‘피·아’가 생긴다는 것은, 검찰 입장에서는 범죄를 저지르고 은폐하려는 ‘피(피의자)’와 ‘아(검찰)’가 있을 것이다.”
이 부장검사의 ‘피·아’ 언급은 천경득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의 발언을 빗댄 것이다. 공판 과정에서 이인걸 당시 청와대 특감반장은 천 전 행정관으로부터 유 전 국장 감찰 문제와 관련해 “피·아 구분을 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특감반 감찰에서 유 전 국장의 비위 혐의가 중대하다는 점이 밝혀졌지만, 수사 의뢰 등의 조처 없이 사표를 받는 선에서 사안을 종결한 것은 참여정부 인사였던 유 전 국장 ‘봐주기’라고 보고 있다.
변호인 “직권남용 법리 남용하며 구속영장 청구…악몽의 크리스마스”
이 부장검사와 조 전 수석 변호인은 지난해 연말의 구속영장 기각 상황을 떠올리며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영장심사를 맡았던 권덕진 서울동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조 전 수석이 직권을 남용해 유재수에 대한 감찰을 중단한 결과, 우리 사회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후퇴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저해한 사정이 있다. 범죄혐의가 소명된다”고 했지만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있다. 당시 검찰로선 조 전 수석을 구속시키진 못했지만 법원이 “조 전 수석이 법치주의를 후퇴시켰다”고 지적하며 혐의가 소명됐다고 판단한 이상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자평했다. 이 부장검사는 재판을 마무리하며 이 사실을 상기시키며 재판부에 ‘증거와 법리에 따른 판단’을 희망한다고 했다.
“수사팀은 항상 법원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해왔다. 저희가 팩트 파인딩에만 골몰해 있던 상황에서 이 사건은 ‘법치주의의 문제’라는 것을 일깨워 주신 분이 이 사건 영장 판사님이셨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재판장(김미리 부장판사)과 재판부는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라 (판단) 내려주실 것이라고 보고, 저희 수사팀도 그런 마음으로 수사했다는 심정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이에 조 전 수석의 변호인인 김종근 변호사는 검찰이 무리하게 구속영장까지 청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맡은 뒤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영장 단계부터 관여해왔다. 작년 영장심사를 준비했던 일들도 생각난다. 영장심사가 2019년 12월26일에 있었고, 변호인들끼리 이틀 정도 잠도 못 자며 준비했다. 정말 악몽의 크리스마스였다. 저희가 이 재판에서 걱정했던 것은 직권남용이라는 범죄가 최근 들어 왜 이렇게 남용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도 직권남용 사건 변론도 하고, 국내에 나와 있는 판례 중 검토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직권남용을 이렇게 적용할 건 아니다, 그 생각밖엔 안 든다.”
김 변호사는 영장실질심사 당시를 ‘악몽의 크리스마스’로 기억하면서도 ‘직권남용의 남용’을 함께 지적했다. 국정농단·사법농단에 이어 고위공직자 수사가 이어질 때마다 검찰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적용해 재판에 넘기는 패턴에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공무 수행 과정에서의 일을 직권남용죄로 처벌한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 인사의 목을 죄는 무기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해 12월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법원에 출석한 유재수 전 금융위 금융정책국장.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유재수가 검찰에서 밝힌 백원우·김경수·천경득·윤건영과의 관계
‘유재수 감찰무마’ 재판 과정에서 여권 유력인사들이 벌였다는 ‘유재수 구명운동’ 정황은 특감반원들의 증언과 검찰조서 등을 통해 수차례 도마에 올랐다. 검찰은 진행 중이던 유 전 국장 감찰이 구명운동 때문에 좌초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조 전 수석과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은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이에 검찰은 이날 서증조사 과정에서 유 전 국장이 참여정부 ‘실세’에 가까웠음을 입증해주는 유 전 국장의 검찰 진술을 공개했다.
검찰은 먼저 유재수-백원우 관계를 짐작하게 하는 유 전 국장의 피의자 신문조서 내용을 밝혔다. 백 전 비서관은 조 전 수석 지시로 유 전 국장과 관련된 구명운동 상황을 처음 알아본 인물이기도 하다. 이 일을 계기로 백 전 비서관은 유 전 국장 감찰 사건에 개입하게 됐고, 금융위원회에 유 전 국장 인사 조처 통보를 하게 되면서 직권남용 사건의 피고인이 됐다.
검찰 이 사건으로 기소된 박형철·백원우와 아는 사이인가?
유재수 전 국장 백원우만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참여정부 때 함께 행정관으로 근무했고, 친하진 않지만 알고 있다. 2016년 총선에서 (백원우가) 떨어진 뒤에 술자리에서 본 적이 있다. 그때 백원우가 ‘2등으로 떨어지면 선거비가 많이 보전돼서 망하는 건 아니’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검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나?
유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관계다.
그러나 백 전 비서관은 지난달 증인신문 당시 유 전 국장과의 관계를 묻는 검찰 질문에 “(유 전 국장의) 존재만 알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검찰 유재수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백원우 전 비서관 행사장 같은 곳에서 봤을 수 있다. 제가 (유재수의) 이름과 직책을 정확히 인식한 건 민정비서관이 된 뒤 다른 회의에서 명함을 줬을 때다.
검 유재수는 2016년 총선 뒤 “2등으로 떨어지면 선거비가 많이 보전돼서 망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기억하는데?
백 여러 사람들 모인 행사장에서 그런 말을 한 적 있다. 유재수에게 죄송한 표현이지만 그를 기억한다거나, 기억할 만큼 존재감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검 유재수는 ‘백원우와 지금도 연락하냐’고 하니 “가끔 연락 주고받는 관계”라고 했는데.
백 (감찰) 사안이 발생해 통화한 것 외에는 사적으로 만나거나 그 어떤 공식적인 면담, 만남도 한 적이 없다.
검 유재수는 참여정부에서 부속실 행정관으로 근무한 뒤 현 정부 주요 인사와 친분이 있다고 하는데 알고 있나?
백 최근에 알게 됐다.
검찰은 이어 김경수 경남지사가 유 전 국장 감찰 건에 연루된 정황을 보여주는 진술도 공개했다. 백 전 비서관은 유일하게 김 지사로부터 유 전 국장 감찰 상황을 묻는 연락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은 백 전 비서관이 김 지사의 ‘민원’을 받은 뒤 자신에게 “유재수 본인이 억울하다고 하는데 선처하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백 전 비서관은 이를 부인했다. 조 전 수석도 “당시 김 지사와 통화를 나눈 적은 있지만 권력기구 개혁과제에 대한 브리핑을 했을 뿐 유 전 국장 관련 논의를 하거나 사적으로 만난 적은 없다”고 단언해 구명운동은 감찰 관련 민정수석실의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유재수-김경수 관계에 대한 유 전 국장의 검찰 진술이다.
유재수 전 국장 김경수와는 (참여정부 때) 1부속실에서 함께 근무해 알던 사이다. 참여정부 때부터 알던 김경수와 통화하며 “특감반 감찰을 받고 있다”고 얘기하면서 (포렌식을 위한) 휴대폰 제출도 절차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여 토로했다. “금융정책국장 자리를 계속 수행하긴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도 했다. 해외 파견을 갈 자리도 있어서 사직하는 것보다 그런 식으로 가는 것이 나을 거 같아 인사 얘기도 김경수와 했다. 김경수는 백원우에게 선처를 구했던 걸로 보였는데, 답답해서 김경수와 대화 많이 한 것이 사실이다. 김경수도 말을 많이 하진 않았고, 본인이 알아본 내용을 내게 몇 번 이야기해준 적이 있다. “특감반장이 국장 자리 계속 수행하는 것은 어려운 분위기라고 했다”는 정도의 내용을 말해준 사실이 있다.
검찰 김경수가 민정수석 관계자에게 (감찰 관련 내용을) 전달한 사실이 있나?
유 전 국장 그랬던 것으로 안다. 김경수가 알아보겠다고 했고, (자리 유지는) 어렵겠다고 피드백을 해줘서 ‘민정수석실에서 알아봤구나’ (생각)했다.
김 지사도 검찰 조사에서 “유 전 국장과 호형호제하던 사이”라며 친분을 인정하고 이렇게 진술했다.
“유재수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 달라는 이야기는 안 했는데, 본인이 억울하다고 하니 백원우에게 ‘유재수가 억울해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유재수가 억울하다고 하니 잘 살펴달라’고 얘기했다. 당시 유재수가 연락을 많이 하면서 힘들어했다. 하소연을 하면 제가 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검찰 진술과 법정 증언을 종합하면, 유 전 국장은 김 지사에게 감찰과 관련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고, 김 지사는 백 전 비서관에게 이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백 전 비서관도 김 지사의 연락을 받은 뒤 유 전 국장과 직접 통화한 사실관계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 다만 김 지사의 ‘민원’을 적극 수용해 특감반을 압박하진 않았다는 게 백 전 비서관의 주장이다.
천경득 전 행정관과 유 전 국장의 관계, 감찰 당시 나눈 이야기와 그에 관한 천 전 행정관의 인식도 유 전 국장 진술로 공개됐다. 특감반은 유 전 국장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 그가 여권 인사들과 나눴던 문자메시지를 보면서 유 전 국장이 ‘실세’임을 느꼈다고 했다. 그 중에는 천 전 행정관과 유 전 국장이 금융위 상임위원 후보로 누구를 앉힐지 인사문제를 논하는 내용도 있었다. 이들이 추천한 이아무개 변호사는 실제로 2017년 12월 금융위 상임위원으로 임명됐다.
이인걸 당시 특감반장도 천 전 행정관이 특감반의 유재수 감찰에 부정적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이 전 반장은 천 전 행정관이 저녁식사 자리에서 “유재수는 좋은 사람이다. 우리 편이다. 유재수를 살려야 이 정부에 도움이 된다. 정부 출범 얼마 안 된 시점에 금융권을 장악해야 하는데 요직인 정책국장 날리면 정부에 많은 부담이 돼 좋지 않다”고 말한 내용을 기억했다. 유 전 국장은 검찰 조사에서 천 전 행정관과의 관계를 이렇게 소개했다.
“천경득이 국회 정무위원회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보좌관으로 있었다. 금융위에 근무하면서 국회 출입 잦았을 때, 정재호 의원실을 출입하면서 천 전 행정관을 알게 됐다. 천 전 행정관이 페이스북에 신상에 안 좋은 내용이나 청와대를 그만둘 것 같은 글을 올리면 근황이 궁금해 통화한 적은 있다. 천경득과의 세세한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특감반 감찰이 너무 힘들다. 골프채 수수, 대납 의혹 조사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천경득은 김경수와 달리 솔직하고 센 편이다. 제 얘기를 듣자 ‘유 국장 같은 분을 왜 감찰하냐’고 화내고 안타까워했다.”
천 전 행정관은 특감반 감찰을 찍어누르기식 ‘기획 감찰’로 인식하며 검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천경득 전 행정관 저는 이인걸이 사람 찍고 기획 감찰하는 느낌을 받았다. 유재수가 개혁적 인물이고 금융위 국장이라는 중요한 자리에 간 지 얼마 안 되었고, 무엇보다 정부 초창기에 중요 자리에 있는 인사가 감찰받는 것은 정무적으로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저도 핀잔 준다는 식으로 이인걸에게 이야기했으나 이인걸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겠다.
검찰 유재수에게 이아무개 변호사를 금융위 상임위원 후보로 추천한 경위는 무엇인가?
천 이 변호사가 미국에서 변호사 공부를 했던 이야기 등이 문득 생각나 유재수에게 전화나 텔레그램으로 (그를) 추천했던 것은 사실이다.
유 전 국장이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에게 감찰 건을 상의한 내용도 그의 검찰 진술을 통해 공개됐다.
유재수 전 국장 특감반 감찰이 시작된 뒤 얼마 안 돼 감찰받고 있는 사실과 금융위 정책국장 수행이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윤건영도 청와대에 중요한 자리가 있을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제 가장 큰 관심사는 감찰에도 불구하고 정책국장을 계속 할 수 있을지 여부였다. (그래서) 윤건영에게 “감찰 때문에 국장 자리를 내놔야 하느냐”고 물으니 윤건영이 “그런 분위기다”라고 해, 제 감찰과 관련해 ‘윤건영이 알아봤구나’라고 생각했다.
검찰 윤건영이 (하소연을) 듣고 민정수석실에 전화했나?
유 국장 자리 유지를 두고 하소연을 하자 “어렵다”고 말한 것을 보니 윤건영이 직접 확인했거나, 김경수와 친해 알게 된 내용을 전달했을 수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확인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윤 전 실장도 자신이 기억하는 감찰 당시 상황을 검찰에 밝혔다. 유 전 국장은 윤 전 실장이 감찰 건을 알아봐 준 것 같다고 추정했지만, 윤 전 실장은 이를 부인했다. 앞서 백 전 비서관도 유 전 국장 감찰 건을 논의한 것은 맞지만 “국정상황실장으로서 돌아가는 일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상황을 공유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윤건영 전 실장 유 전 국장에게 감찰 이야기를 들었다. 백원우가 “유재수를 아느냐”고 물어 “함께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사람” 정도로 답했다. 백원우는 “나는 (유재수 관련) 기억이 없다”고 했다. 백원우와 이야기를 나눈 뒤인지는 모르겠지만 유재수에게 전화가 왔다. “감찰을 받고 있어 억울하다”고 말하기에 “적극 소명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한 것으로 기억한다.
검찰 유재수 감찰건 관련 특감반이나 민정수석실과 협의한 사실이 있나?
윤 없다.
지난 증인신문 과정에서 특감반원들은 입을 모아 ‘유 전 국장이 실세구나’라고 느끼며 외부 구명운동에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김 지사와 천 전 행정관도 유 전 국장의 하소연을 민정수석실 쪽에 전달한 정황은 엿보인다. 당시 특감반 업무를 총괄한 박 전 비서관도 특감반의 불평을 조 전 수석에게 전해 조 전 수석이 백 전 비서관에게 상황파악을 지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 전 수석과 백 전 비서관은 모두 구명운동이 감찰 관련 의사결정 과정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서증조사 과정에서 공개한 관련자 진술을 접한 조 전 수석 쪽 변호인은 “유 전 국장과 김 지사, 천 전 행정관 및 윤 전 실장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는 조 전 수석과 전혀 무관하다”며 “조 전 수석이 알 수 없는 내용이고, 그들 사이의 대화 내용은 직접 전달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또 유 전 국장의 구명운동 목적은 ‘금융정책국장 자리 지키기’였지만, 김 지사 등으로부터 모두 “그건 안 된다”는 답을 들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감찰 결과상 유 전 국장이 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 이상, 검찰 주장처럼 감찰이 없었던 것처럼 사태를 무마한 것은 모순이라는 반박이다.
결국 재판부가 구명운동의 실체를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중요하다. 그 판단에 따라 유 전 국장 감찰 종료가 민정수석의 적법한 권한 행사였는지, 직권을 남용한 부당 지시였는지가 판가름난다.
금융위는 유재수 감찰 결과를 알았을까, 몰랐을까
구명운동의 실체와 더불어 유 전 국장 사표 수리 방침이 금융위원회에 전달된 방식과 과정 또한 직권남용 사건의 핵심 쟁점이었다. 이를 두고 조 전 수석 쪽과 금융위 관계자들의 입장은 팽팽하게 맞붙었다. 금융위 김용범 전 부위원장과 최종구 위원장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유 전 국장 관련 비위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달받지 못했고, 인사 조처 정도만 취하라는 통보만 받았을 뿐”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반면 조 전 수석 쪽은 청와대의 ‘인사 조처’ 방침이 사실상 사표 수리와 같은 맥락이라며 추가적인 징계는 금융위의 몫이었다고 항변해왔다.
백 전 비서관으로부터 유 전 국장 처리 지침을 전달받은 김용범 전 부위원장은 ‘사표 수리’라는 표현 자체를 들은 적이 없다고 했지만, 백 전 비서관은 그런 의미를 전달했다며 상반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검찰은 이에 유 전 국장의 조서를 공개했는데, 유 전 국장은 “사표와 관련해 (금융위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느냐”는 질문에 “김 전 부위원장에게 그런 취지의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 누구로부터도 사표 내야 한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유 전 국장은 김 지사나 윤 전 실장 등으로부터 “현재의 금융정책국장 자리를 유지하긴 어렵다”는 말은 들었으나, 본인이 직접 사표를 써야 한다는 방침은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검찰은 사실상 유 전 국장 감찰이 끝난 뒤 실질적인 후속 조처는 없었고, 유 전 국장은 민주당 수석전문위원 자리로 옮겨갈 수 있게 됐으므로 정당한 감찰 절차에서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 전 수석 쪽은 금융위 고위공직자의 사표를 받을 권한이 없는 청와대가 인사 조처와 관련한 직접적인 요청을 할 수 없었기에 ‘(비위에) 상응하는 인사 조처를 하라’는 메시지를 금융위에 전달하라고 백 전 비서관에게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금융위가 유 전 국장의 비위·감찰 상황을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었는지도 중요 쟁점이다. 당시 관가에서는 “유 전 국장 감찰 관련 소문이 파다했다”며 청와대가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다 해도 금융위가 비위 내용을 몰랐을 리 없다는 게 조 전 수석과 백 전 비서관의 시각이다. 이날 조 전 수석 변호인도 ‘유재수 비위·감찰’을 몰랐다고 주장하는 금융위 수뇌부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최종구와 김용범은 유 전 국장의 비위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하는데, 검찰이 왜 이 부분을 믿을지 의문이었다. 법률가라면 누가 봐도 ‘저걸 믿을 리가 있나, (비위사실을) 모를 리가 있나’ 생각했다. (그럼에도) 검찰이 계속 (금융위 수뇌부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말씀을 하셔서, 그건 검찰 측이 사실로 믿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검찰의) ‘순진한 신뢰’이긴 한데, 법률가라면 판단을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에 검찰은 2018년 10월 금융위의 ‘국정감사 대비 큐엔에이(QnA) 핵심자료’와, 같은 해 12월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록도 증거로 제출했다. 금융위 감사담당관실이 작성한 핵심자료에는 금융위가 유 전 국장의 자체 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이유가 “품위유지 관련 청와대의 감찰이 있었고, 추가 감사를 실시할 만한 새로운 사실이 없어 시행하지 않았다. 청와대의 감찰 결과에 대한 공식 통보가 없었고, 추가 감사를 실시할 감사 정보도 없었다”는 취지로 적혀 있었다. 국회 정무위 회의록에 드러난 두 금융위 수장의 답변 취지도 국정감사 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검찰은 이렇게 주장했다.
“특감반도 그렇고, 금융위도 그렇고 (민정수석실이) 유재수 감찰을 덮었다는 답변이 동일하게 나왔다. 오직 조국과 백원우만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국은 김용범이나 최종구가 검찰 조사를 받게 되니까 처벌을 면하려고 거짓 진술을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이 사건 수사 개시 2년 전인 2018년 12월(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도 최종구와 김용범은 이 법정에서 했던 답변과 동일한 내용을 말했다. 김용범은 기획재정부 1차관으로 영전(2019년 8월)도 했는데, (국회나 법정) 답변 내용이 거짓이고 청와대에 책임을 떠넘긴 것이라면 경질됐어야 맞다.”
“유재수 감찰서 사생활 문제” 조국 국회 답변 영상자료 제출…검찰, 재판부에 “꼭 봐달라”
2018년 12월 민정수석으로선 이례적으로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조 전 수석이 했던 발언은 답변 초안을 만든 박형철 전 비서관이 “허위 답변이었다”고 폭로하면서 공방의 대상이 됐다. “첩보가 들어와 감찰한 결과, 비위 첩보 자체에 대해서는 근거가 약하다고 봤다. 감찰에 들어갔는데 다른 사생활이 나와서 징계 요청을 하지 않았다”고 소명한 내용의 진위를 둘러싼 검찰과 조 전 수석 쪽의 ‘완전히 다른’ 해석은 이날 재판에서도 문제가 됐다.
검찰은 당시 모습이 담긴 영상자료를 제출하며 “재판부가 꼭 열람해 봤으면 좋겠다. 조 전 수석은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했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조 전 수석이 증인신문에서 당시 상황을 ‘정치적 공방의 장’으로 규정하며 “야당 의원들의 거센 공격을 받는 가운데 답변을 하게 돼 하려던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답변 내용의) 맥락적 해석이 중요하다”는 발언에 대한 반박이었다.
검찰은 특감반의 외교부 고위공무원 감찰 자료도 함께 제출했다. 국회 운영위에서 당시 야당 의원들이 특감반의 ‘별건 감찰’ 의혹을 제기하자 조 전 수석은 외교부 사례를 들어 “사생활 문제가 나와 징계 요청을 하지 않았고, 유 전 국장 건도 그와 비슷하다”는 취지로 해명한 데 대한 반박 차원이었다. 유 전 국장 비위 혐의가 명백했음에도 이를 숨기고 ‘사생활 문제’만 부각해 민정수석실 책임을 줄이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시각이다. 검찰은 외교부 고위공무원과 유 전 국장 감찰 뒤 처리가 사뭇 달랐다는 점을 이렇게 강조했다.
“이 사건과 무관한 (외교부 감찰) 자료를 왜 보여드리냐. 외교부 건도 사생활 문제가 발견됐고, 외교부에 사건을 이첩하면서 감찰 자료를 송부했다. 관련 기관에 자료를 다 보내줬고 청와대도 해당 자료를 다 보존하고 있다. (이 건과) 똑같다고 하면서도 유재수 건은 금융위에 자료도 안 보내주고, 청와대도 이를 보존하지 않고 있다. 완전히 다른 사건으로 취급한 것이다.”
이에 대해 조 전 수석 쪽도 즉각 반박에 나섰다. 변호인은 국회 ‘허위 답변’ 의혹을 증폭시킨 박 전 비서관이 국회 운영위 답변 초안 작성자였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박 전 비서관은 감찰이 한창일 당시 수사 의뢰 등 강경한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특감반에 “보고서를 세게 쓰라”고 지시했지만, 국회 답변에서는 ‘유재수 엄벌’ 기조와 달랐다. 변호인은 감찰 보고서와 국회 답변은 ‘공격’과 ‘방어’라는 각각 상반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며 이렇게 해명했다.
“(국회) 답변 초안도 박형철 당시 비서관이 작성을 했다. 또 이 사건에서 가장 문제가 됐던 (유재수 감찰) 4차 보고서도 박형철이 개입돼 작성됐다. 4차 보고서는 감찰을 하는 입장에서 검사 출신인 박형철이 ‘범죄가 되는 방향’으로 보고서를 쓴 것이다. 그런데 (국회에 나가 답변할 때에는) 이제 방어할 필요가 생겼다. 방어할 때는 변호인의 시각으로, 자기가 조사했던 내용 중 약점이 될 부분을 (해명해야 한다). (유 전 국장이 받은) 골프채는 대가성이 있을까, 금액은 얼마일까 등을 생각한다. 항공권 문제도 소명자료로 밝혀진 바가 당시엔 없었다. 김영란법 위반 여부에 대한 분석도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정반대 시각으로 보면 (비위 혐의) 근거가 약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두 가지의 시각으로, 공격적·방어적 시각으로 본 두 문서가 존재하는 것이다. 조 전 수석은 방어적 시각에서 작성된 문서로 답변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마지막 재판까지도 검찰과 피고인의 상반되는 입장과 기억, 혐의를 바라보는 시각은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검찰은 직권남용 사건에 대한 구형 의견을 따로 밝히지는 않았다. 감찰 무마 사건 심리가 마무리되면서, 다음 달 4일부터 재판부는 조 전 수석의 가족 관련 비리를 살펴볼 예정이다. 본격적인 공판이 시작되면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도 조 전 수석과 함께 피고인으로 출석하게 될 전망이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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