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뒤 피해자가 “괜찮다”고 말했더라도 이를 진정한 동의 표시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준강간(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육군 하사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2014년 7월 ㄱ하사는 고등학생 피해자 ㄴ양과 함께 술을 먹다가 성폭행한 혐의로 군사법원에 기소됐다. 당시 술에 취해 있던 ㄴ양은 화장실에서 ㄱ하사의 지인인 ㄷ씨에게 이미 성폭행을 당한 직후이기도 했다. 그러나 군사법원 1·2심은 성관계 뒤 “괜찮다”고 한 ㄴ양의 말 등을 근거로 ㄱ하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합의에 따른 성관계’로 본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피해자의 ‘괜찮다’는 답변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정상적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형식적인 답변을 한 것에 불과해 보일 뿐 성행위에 동의하는 답변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가 “스스로 강간 피해자가 되는 부분이 가장 무서웠던 것 같고, 강간 피해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서 무슨 대답이든 괜찮다고 했던 것 같다”고 진술한 점도 그 근거로 제시했다. 대법원은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기존 판례도 강조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