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갑질119가 7월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갑질금지법 시행 1년을 맞아 구멍슝슝 갑질금지법 리모델링 기자회견을 열고 적용범위 확대와 근로기준법 76조 3 불이행 처벌조항 신설을 촉구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사장님이 ‘천연두에 걸린 피부 같다’며 외모를 비하하고 주말까지 사적인 연락을 해서 일을 시킵니다. ‘여자는 결혼하면 그만둬야지’라는 말도 버릇처럼 해서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어요.”(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ㄱ씨)
“원청 관리자가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고 원할 때 휴가도 갈 수 없습니다. 하청업체라고 무시하는데 어디에 신고해야 할까요?”(하청업체 노동자 ㄴ씨)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올해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사례다. 그러나 가해자는 법 위반으로는 처벌받지 않는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제76조2·3항)은 ‘5인 미만 사업장’과 ‘원청 관리자’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여야 모두 직장 내 폭언·폭행 사건이 터질 때마다 기존 법을 보완해야 한다며 법 개정안을 앞다퉈 쏟아냈다. 그러나 9일 정기국회 종료를 앞두고 확인해보니, 국회는 법 개정안을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사실상 방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7월16일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처벌 조항이 미비하고 적용 범위가 좁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현행법은 괴롭힘 신고자에게 회사가 해고 등 불리한 처분을 내렸을 경우에만 사용자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법은 사용자의 특수관계인(친인척, 원청회사 등 3자)을 포함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고, 사용자가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더라도 별다른 제재가 없다.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대상인 5인 미만 사업장도 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실제로 직장갑질119가 올해 7월부터 11월까지 이메일을 통해 접수한 직장 내 괴롭힘 사례 총 553건을 유형별로 분석한 결과 △특수관계인 괴롭힘이 35건(6.3%) △사용자 조처 의무 위반이 81건(14.6%) △5인 미만 사업장 내 괴롭힘이 56건(10%)으로 집계됐다.
올해 여야는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피해자들의 호소가 나올 때마다 ‘특수관계인(3자) 괴롭힘 규정’,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등을 담은 법 개정안 15건을 발의했다. 하지만 7일 <한겨레> 취재 결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는 법 개정안을 ‘비쟁점 법안’으로 분류해놓고 관련 논의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조합법 개정안 등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 관련 법안을 두고 여야가 갈등하면서 논의가 뒤로 밀린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환노위 관계자는 “야당에서 여러 쟁점 법안에 협조해주지 않다 보니 후순위로 밀렸다”고 말했다.
법안을 검토하는 환노위 전문위원들은 법 개정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인다. 법 개정안 검토보고서는 “벌칙 규정 신설을 통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면서도 “우선 시행되는 제도들의 현황을 살펴본 뒤 논의가 이어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개정을 권고했고 여야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개정을 약속했는데, 제대로 논의하지 않고 법안을 상정조차 하지 않는 것은 국회의원의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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