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아이가 그린 그림. 지난 추석 할아버지·할머니 등 가족들과 둘러앉아 꽃게 먹는 모습. ㄱ씨 제공
“저희 가족이 겪은 일을 다른 가족은 절대로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난 10월 인천 연수구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일어난 사고로 5살 아들을 떠나보낸 엄마 ㄱ씨는 10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힘겹게 말했다. 아이는 10월21일 오전 11시30분께 어린이집에서 야외 활동을 하던 중 친구와 부딪힌 뒤 넘어져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어린이집은 아이가 졸리다고 해 재웠고, 일어나 구토를 하자 오후 1시15분께 ㄱ씨에게 전화로 이를 알리고 병원으로 옮겼다. 아이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이틀 만에 골절과 뇌출혈로 사망했다. 인천 연수경찰서는 지난달 24일 어린이집 원장과 교사를 기소 의견(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엄마는 “그림 그리기와 만들기를 좋아하던 평범한 5살 아이”로 아들을 기억한다. 우주를 날아다니는 영화 속 주인공의 옷을 좋아해서 아들의 수의로 스파이더맨 옷을 준비했다. 2살 동생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어 하면 “이제 형은 다 갖고 놀았으니까 네가 갖고 놀아”라고 말할 줄 아는 착한 아이였다. 동생은 한동안 갑자기 보이지 않는 ‘형아’를 부르면서 찾았고, 형이 특히 좋아하던 장난감은 가지고 놀지 않았다. 심리상담사의 조언대로 동생에게 ‘형이 하늘나라로 갔다’고 알려줬더니, 동생은 집에 들어올 때마다 형이 그렸던 그림과 사진에 인사를 한다.
5살 아이가 그린 그림. 자동차들이 우주로 경주를 시작하기 전 신호를 기다리는 모습. ㄱ씨 제공
5살 아이가 영화 <어벤저스> 히어로를 그린 그림. ㄱ씨 제공
엄마는 슬픔에 빠져 좌절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좀 더 많은 교사가 아이들을 돌볼 수 있도록 교사 대 아동 비율을 줄여야 해요.” 아이의 사고는 교사 1명이 놀이터에서 아이 19명을 한꺼번에 돌보다가 일어났다.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에 어린이집의 교사 1명당 아동 수는 만 0살 3명, 만 1살 5명, 만 2살 7명, 만 3살 15명, 만 4살 이상은 20명으로 규정돼 있다. 시행규칙은 시장·군수·구청장이 특례인정 범위 내에서 바꿀 수 있다. 만 4살 이상인 경우 도서·벽지·농어촌지역은 24명까지, 일반 지역은 23명까지다. 교사 1명이 아이 24명을 돌볼 수 있다는 얘기다.
ㄱ씨는
‘교사 대 아동 비율’에 관한 법 개정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을 지난달 13일 올렸다. 청원 만료기간을 사흘 앞둔 10일 밤까지 약 14만9천명이 동의했다. 어린이집 교사와 원장, 학부모 단체들도 ㄱ씨와 함께한다. 지난달 28일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 정치하는엄마들, 한국보육학회 등 20개 단체는 성명을 내어 “과도한 교사 대 아동 비율은 영유아의 기본적인 권리인 생존권을 위협할 뿐 아니라 양질의 보육을 가로막는 주범”이라며 법 개정을 촉구했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어린이집 안전사고는 3만9969건 발생했다. 이 가운데 사망 사고는 27건이었다. 전문가들은 교사 대 아동 비율이 줄면 이러한 사고와 학대 사건을 줄일 수 있고, 아동의 발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서영숙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명예교수는 “만 3살의 경우 15명으로 규정돼 있는데, 전문가들이 권장하는 비율은 8~12명”이라고 말했다. 김영명 서강어린이집 원장(아이들이행복한세상 고문)은 “현재는 사고 우려 때문에 아이들의 체험에 신경 쓸 여력 없이 사고를 막는 데 급급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보육 예산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재정 여건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재정 여건, 연령반별 우선순위 등을 교육부와 함께 검토하고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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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ㄱ씨가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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