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공무원이 연간 1200건에 이른 민원을 처리하다가 한 시민이 제기한 민원을 신속하게 처리하지 못했다고 해서 직무유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직무유기 혐의로 기소된 충남 보령시청 공무원 ㄱ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7일 밝혔다.
ㄱ씨는 지난 2017년 10월 ‘축산분뇨처리시설이 애초 설계와 다르게 시공되고 있는데도 건축주가 사용 신고를 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는 민원을 받고서도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건축법 위법사항이 비교적 경미했으며, 사후에 직무유기로 인한 결과가 시정될 수 있는 기회가 아예 없지는 않았고 실제로 후임자에 의해 위법사항이 해소돼 법익침해의 결과가 어느 정도 회복됐다고 볼 수 있다”며 선고를 유예했다. 직무유기가 인정되지만 처벌할 정도는 아니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2심은 “민원인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신속하게 하지 못했다고 볼 수는 있을지언정 의식적으로 관련 업무를 방임하거나 포기한 것으로 보이지는 아니한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ㄱ씨가 구두 민원을 들은 뒤 조속하게 현장에 가서 확인하는 등의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인정하면서도 “인사이동으로 업무가 이관돼 해당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기한이 넉넉하지 않았던 점, ㄱ씨가 자신이 담당하는 연간 서면 접수 민원이 약 1200건을 초과하며 실시간으로 다수의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바쁜 상황이라고 진술한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직무유기죄의 성립, 형사재판에서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조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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