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검찰총장 후보군 9명을 추린 뒤 이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건에는 근무경력, 재산내역 등 공개된 정보뿐 아니라 검찰·정치권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세평 등 민감한 내용도 포함됐다.
27일 <한겨레>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2015년 10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은 ‘차기 검찰총장 후보군 프로필’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했다. 34장 분량인 이 문건에는 그해 12월에 취임할 41대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던 김수남 대검찰청 차장,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 임정혁 법무연수원장, 이득홍 서울고검장, 김경수 대구고검장,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 김희관 광주고검장, 김주현 법무부 차관, 조성욱 대전고검장까지 모두 9명의 △가족관계 △개인성향 △여야 정치인들과의 관계 등을 정리했다.
‘평판’ 항목에는 주로 여야 정치인들과의 친분이나 정치권의 평가가 담겼다. “황교안 국무총리와 우병우 민정수석과 친분이 두터움”, “성공적인 행보를 보일 경우 (총장으로) 유력할 것이라는 말이 청와대 주변에서 나왔다고 함”, “민주당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은 적이 있음”, “하명수사에서 성과 냈다는 평, 그러나 여권에서도 우려하고 있음”이라는 내용 등이다. 검사 등 법조인을 통해 수집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보도 담겼다. “평검사들이 늦은 밤 근처에서 예고 없이 전화를 걸어 ‘술 사달라’고 조르면 슬리퍼 차림으로 나오는 소탈한 성품”이라거나 “초임 검사 시절에는 독선적이었으나 교회에서 사역반 등을 거치면서 겸손한 스타일로 변모”, “세 차례 연속 사법고시에서 낙방하자 다른 진로를 찾아보다가 행정고시를 공부해 동시 합격”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한 검찰총장 예비 후보자에 대해서는 “한 방송사 기자는 ‘조중동 신문 편애자’이며 권력 지향적인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면서도 “함께 근무한 평검사에 따르면 권력 지향적이라고 느껴진 적은 없었다고 함”이라고 적었다. 이 밖에 중수부장 후임으로 거론됐다거나 동기 중 가장 빨리 고검장으로 승진했다는 내부 정보도 포함됐다.
‘특이사항’ 항목에는 상세한 가족관계 내용이 기재됐다. 한 예비 후보자의 동생이 “서울대총장실 점거사건 당시 총학생회 문화부장으로 현장에 없었지만, 연대책임을 물은 대학에 의해 제적됐으나 ○ 검사장(친형)의 권유로 행정소송 제기해 승소 판결받아 사법시험을 준비”했다고 적었다. 또 다른 예비 후보자는 “전형적인 법조인 집안 출신”이라며 배우자·처남·동서·외삼촌 등의 실명을 적었다.
관보에 올라온 재산현황과 기사 내용도 소개됐다. 법원행정처는 “집안의 종손으로 370평의 대지를 소유”, “2대 독자로 상속받은 것이라 문제 될 것 없어 보임”이라는 내용의 분석을 달았다. 배우자 명의 재산에 대한 의심 사항도 적어놨다. “다운 계약 가능성 높아 보임” “투기 의혹이 제기될 소지가 있는지 취득 경위 확인 필요” “본인은 도덕성 시비가 이는 것 자체를 우려하고 있다고 함” 등의 내용이었다. 또 이전에 보도된 기사를 인용해 “종교가 없는데도 지방 근무 때마다 성경을 여러 차례 독파했다”, “이석기 사건으로 청와대의 미움을 샀다”고도 적었다.
문건에서 ‘유력한 후보’로 꼽힌 김수남 대검 차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총장으로 임명됐다. 이 문건은 ‘사법농단’ 수사를 하던 검찰이 확보해 관련자 조사도 진행했으나 수사팀은 직권남용죄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봤다. 수사팀 관계자는 “내용이 굉장히 상세한 건 맞지만 기본적으로 공인에 대한 정보이며, 정보 수집 자체를 잘못된 것으로 볼 순 없어 법적으로 문제 삼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법원 쪽은 “문건 작성 경위 및 취지에 대해 확인이 어렵다”고 답했다.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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