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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하늘나라에서는 꼭 아름다운 조국 땅 만끽하시기를”

등록 2020-12-29 17:54수정 2022-03-17 12:07

일본 교토에서 난 재일동포 2세
유신정권 간첩조작 고문에 ‘정신병’
석방 뒤 일본서 20여년 정신병원에
재심 무죄 받고도 고국 방문 꺼려
‘한국은 나쁜 나라’ ‘나는 무죄야’
“모국이 두려움 대상 각인된 탓”
[가신이의 발자취] 고문피해자 고 김승효 선생 영전에

재심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일본 교토에서 고인(가운데)과 고인의 형 김승홍(오른쪽 두번째)씨와 필자(맨오른쪽)가 사진을 찍고 있다. 장경욱 변호사 제공
재심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일본 교토에서 고인(가운데)과 고인의 형 김승홍(오른쪽 두번째)씨와 필자(맨오른쪽)가 사진을 찍고 있다. 장경욱 변호사 제공
영화 <자백>의 주인공 중 한 분인 재일동포 모국 유학생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 고 김승효 선생님이 26일 세상을 떠나셨다. 비보를 전한 재일 양심수 동우회의 강종헌 선생은 “고생만 하고 나라에서 아무것도 위로받지 못하고 떠난 그를 생각하니 슬픔보다 분노가 치솟네요”라며 비통한 마음을 전해주셨다.

1950년생인 고인은 일본 교토에서 6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난 재일동포 2세다. 1969년 교토의 리츠메이칸 대학 철학과에 입학해 3학년 재학 중 모국 유학생 선발 시험에 합격해 대학을 중퇴하고 1973년 3월 모국에 유학했다. 8개월 동안 한국어를 배우고 74년에 서울대 교양과정부에 입학했다.

고인은 유학 중 하숙집에서 만난 동료 대학생들과 교제하며 조국의 정을 느끼고 청춘의 꿈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74년 5월 하숙집에서 중앙정보부에 불법연행돼 고문을 받고 간첩으로 조작되며 유학생활은 한순간에 끝났다.

하숙집에서 동료 대학생들과 교제한 모든 것이 ‘북괴의 지령에 따라 하숙집에 잠복하여 포섭’하고, ‘북괴의 지령에 따라 북괴를 이롭게 할 목적의 선전, 선동, 찬양, 고무’가 되었다. 고인은 1975년 12월 대법원에서 12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생활을 하다 81년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되었다.

고인은 고문으로 얻은 정신분열증으로 수감 생활 중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앉은 자리에서 대소변을 그냥 보는 등의 행동으로 다른 재소자들로부터 폭행과 따돌림을 당했다. 교도소 쪽은 정신착란이 우려된다며 작업에서만 제외하고 달리 정신병 치료 등의 조처는 하지 않았다. 1979년부터는 면회를 간 어머니에게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80년부터는 교도관에게 폭언하는 등 이상증세가 악화했다. 가석방 뒤에도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밖에 나가 누가 오지 않았나 확인하고, “여기 있으면 잡히니까 빨리 일본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반복했단다. 이 때문에 가족들이 한국 정신병원에 고인을 1981년 8월부터 5개월간 입원시키기도 했다. 가족들은 고인을 일본으로 데려 가 정신병원에서 통원치료를 했으나 1982년 5월부터는 종일 정좌 자세에서 손을 무릎에 올리고 꼼짝도 하지 않거나 피해망상에 빠져 가족에게까지 폭력적 행동을 보여 결국 82년 7월부터 2003년 3월까지 일본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이 기간에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고인은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동생을 정신병원에서 죽게 하기 싫었던 형님이 17년 전에 고인을 퇴원시켜 내내 동생을 보살폈다.

고인은 재일동포 재심변호단의 도움으로 2016년 11월 재심을 청구했다. 2018년 8월 검사의 무죄 구형과 법원의 재심 무죄 선고로 마침내 간첩 누명을 벗었다. 그러나 재심 재판 때 고인은 한국 땅을 밟을 수 없었다. 재심 무죄 뒤 주위의 간곡한 한국방문 권유에도 고인은 끝까지 거절하셨다.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모국이 두려움의 대상으로 각인된 탓이다.

고인이 생전 우리에게 전한 말씀이다. “무죄를 못 받아 억울해서 죽을 지경이야! 나는 무죄야!”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한국은 나쁜 나라입니다.”

29일 저녁 교토에서는 고인을 추모하는 유족들과 지인들 모임이 있고, 30일은 장례식이다.

“김승효 선생님, 그리도 그립고 아름다웠던 조국에 유학 오신 거 후회하지 마시고 하늘나라에서는 꼭 다시 조국을 찾아주세요.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시고 영혼이라도 이 땅에 오셔서 못다 이룬 청춘의 꿈을 펼치시며 아름다운 조국 땅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장경욱·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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