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졸 여성 등 많은 청년 구직자가 몰리는 간호조무사 직종이 현행 의료법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저임금·불안정 노동환경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30일 ‘불평등과 시민성연구소’는 간호조무사 노동실태를 분석하고 9명을 심층 면담한 결과 등이 담긴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들은 “1970년대 부족한 간호인력 충원을 위해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비의료인’으로 간호조무사 직종이 생겨난 이후 지금까지도 업무·지위가 모호하게 규정돼 있다”며 “많은 간호조무사들이 고용 불안정 등의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꼬집었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만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예외적으로 간호조무사가 간호사 업무 일부를 대체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연구소가 공개한 보고서를 보면 업무 범위와 권한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상태로 간호조무사들이 온갖 잡무에 동원되는 모습이 드러난다. 주사제 투여 등 진료를 보조하는 업무부터 진료비 수납, 세탁 등 자격이 필요하지 않은 업무까지 담당하는 식이다. 의원급 의료기관에선 간호사를 고용하지 않고 간호조무사가 간호사 업무를 전적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른 보건의료인력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고 지원자가 많다는 이유로 임금 수준이 열악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3년 경력의 간호조무사 여성 ㄱ(22)씨는 면담에서 “월 150만원을 준다는 곳도 있고 조금 더 치면 월 175만원 정도”라고 토로했다. 지난 4월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가 간호조무사 425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62%가량이 최저임금 또는 미달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고 답한 바 있다.
“병원 내 가장 약한 위치에 있어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쉽게 항의할 수 없다”는 호소도 나왔다. 병원 내시경실에서 일한다고 밝힌 간호조무사 여성 ㄴ(34)씨는 면담에서 “병원 부원장이 ‘동선을 밟지 말라’고 하거나 ‘90도 인사’를 지시하는 등 갑질이 일어난다”고 털어놓았다. 이와 관련해 보고서는 “의료법 시행령에 간호조무사의 업무 내용 등에 관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아 법률적으로 의사의 지시가 부당한지에 대해서도 판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연구 참여자들은 “간호조무사 직종에 대해 명확한 법률적 정의를 수립하고 안정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간호조무사는 취업 후에도 불안정 상태에 머물게 되는 취약계층 청년을 대표하는 집단”이라며 “청년 정책은 단순히 실업률을 낮추고 취업률을 올리는 데 열중하기보다 청년들에게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고 짚었다.
박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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