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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동학대→공분→대책…우리는 왜 수년째 ‘쳇바퀴’일까

등록 2021-01-07 04:59수정 2021-01-07 09:05

[기고] 정인이 사건을 보며

법정형은 높지만 양형 기준은 낮고
현행법상 즉각 분리 가능한데 먹통

3차례 신고에도 정인이를 못구했다
국가 차원 진상조사를 한적도 없다
꼼꼼히 되짚고 전략 짜야할 이유다
정인양이 잠든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시민들의 추모메시지와 꽃, 장난감 등이 가득 쌓여있다. 양평/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정인양이 잠든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시민들의 추모메시지와 꽃, 장난감 등이 가득 쌓여있다. 양평/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 몸에 멍이 든 아이를 세심히 관찰한 어린이집 교사가 지속적 학대의 증거를 모아 신고했지만, 학대로 판정되지 않았다. 그 뒤 사례관리를 맡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이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 전화로 부모의 말만 들었다.

#2. 경찰은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서도 ‘아이를 입양하여 키우는 사람이 학대할 리가 없다,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생긴 문제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3. 아이의 몸 상태를 확인한 의사가 아동학대로 신고했지만, 경찰은 입양 부모와 알고 지내던 다른 의사가 학대가 아니라고 하자 더는 조사하지 않았다.

전국적 공분을 자아낸 일명 ‘정인이 사건’의 정황들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1은 2014년 울주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진상을 조사해 펴낸 <이서현 보고서>에서, #2와 #3은 2017년 대구·포천 입양아동 학대 사망 사건을 조사한 <은비 보고서>에서 각각 옮겨 적었다. 이번 사건의 설명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똑같다. 두번의 민간 진상조사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사람으로서 닮은꼴로 반복되는 학대의 참극에 깊은 죄의식과 패배감을 느낀다.

가해자를 살인죄로 처벌하라는 분노가 드높다. 정치권이 내놓은 첫번째 답은 형량 강화를 위한 법 개정이다. 가해자는 형량이 낮아 학대를 저지르는가? 양형 기준이 낮아서 문제지 법정형은 이미 높다. 고의적 살인을 기소하고 판결하는 것은 현행법으로도 가능하다. 과거 사건에서도 반복됐던 가해자의 악마화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아이를 가해자에게서 즉각 분리하는 제도를 진작 갖추지 않은 게으른 정책을 탓하는 목소리도 크다. 그러나 현행법의 응급조치 조항으로도 분리는 가능하다. 3월부터는 두번 신고되면 즉각 분리하는 법이 시행되는데, 이런 기계적 분리가 능사일까? 되레 이번 사건의 경우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지속적 학대임을 알린 첫번째 신고 때부터 아이를 분리했어야 했다. 문제는 신고 횟수가 아니라 판단의 전문성 부재다. 게다가 분리한 아이들은 어디에서 언제까지 지내는지, 시설에는 학대와 인권유린이 없는지 등의 문제에 즉각 분리 우선 정책은 답하지 못한다.

수년간 반복 발표된 아동학대 방지대책들을 보면 굵직한 대책과 방향은 이미 다 나와 있다. 그런데도 왜 이 지경일까. 내 생각엔 자원, 협업 그리고 치밀한 조사의 부재부터 해결해야 한다.

정부의 의지는 예산으로 표현된다. 예산이 없어 그 많은 대책이 현장에서 실행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정부의 의지는 신뢰받기 어렵다. 아동보호는 어느 한 기관이 도맡아 책임질 수 없고 지역사회 보호체계 안의 모든 기관이 매일 협업해야 하는 특수한 과제다. 협업은 떠넘기기로 귀결되는 경우가 더 많고 어처구니없이 사소한 지점에서도 어긋나기 십상이다. 치밀한 조사가 필수적인 이유다.

2003년 영국은 2년가량 약 65억원을 들여 빅토리아 클림비라는 아이가 학대로 숨진 사건을 조사한 방대한 보고서를 펴냈다. 아동보호 체계의 일대 개혁을 이끌어낸 이 보고서는 “아이를 살릴 기회가 최소 12번은 있었다”며 “엄청난 기술이나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관련자들이 적절한 질문을 하고 사건 파일을 자세히 보는 것 같은 노력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그 노력이 없었던 것은 대단한 대책의 부재나 비리 때문이 아니라 고위직에서 일선에 이르기까지 만연한 협업 부재와 안이함 탓이라고 짚었다. 심지어 금요일 오후 협력 기관에 보낸 팩스를 아무도 챙기지 않았던 사소한 구멍을 통해서도 아이를 구할 기회가 흘러가 버렸다.

놀랍고 비통하게도 정인이의 16개월 짧은 삶에는 아동보호 책무를 지닌 국내 거의 모든 기관이 한번 이상 개입한 흔적이 있다. 입양기관, 어린이집, 의료기관, 경찰, 아동보호전문기관 등 손을 맞잡고 지켜보는, 지켜봐야 했던 수많은 눈이 있었고 세번이나 신고됐는데도 아이를 구하지 못한 이유가 뭔지 샅샅이 훑는 조사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대해 민간단체들이 일부 국회의원들과 함께 진행한 두번의 조사 이외에 제도 개선으로 직결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는 한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대책은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2016년 미국이 각 지방정부의 아동보호 체계를 점검해 펴낸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국가전략보고서>의 핵심 정책 제언은 “지난 5년간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이들의 죽음을 꼼꼼하게 되짚을 것”이었다. 아이들의 죽음을 복기하는 게 전략의 시작인 까닭을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말은 지금 우리에게도 뼈아프다.

“우리에게

는 아이들의 죽음에서 배울 의무가 있다. 매일 그 죽음을 생각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을 다 배우고 제대로 된 전략을 수립해야만 비로소 아이들의 다 살지 못한 삶을 존중할 수 있다.”

김희경·<이상한 정상가족>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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