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건’ 피의자 양모에 대한 1차 공판기일을 일주일 앞둔 6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시민들이 보낸 조화가 놓여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생후 16개월에 숨진 정인이를 둘러싸고 두 의료인이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9월23 한 소아과 전문의는 정인이가 아동학대로 의심된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관계자와 양부모가 함께 방문한 다른 병원의 의사는 정인이 입 안에 있는 상처를 아동학대로 의심하기보다 구내염이라고 진단했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아동학대를 알 거나 아동학대로 의심되는 경우 의료인은 이를 신고할 의무를 진다. 그러나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의료인의 전문성에 대한 지적과 함께 신고 의무는 제대로 지켰는지를 지적하는 일이 반복된다.
구내염을 진단한 의사도 온라인에서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 의료인이 아동학대 정황을 발견했을 때 제대로 신고할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인의 아동학대 신고와 관련해 곽영호 서울대 응급의학과 교수에게 6일 물었다. 대한소아응급의학회 부회장인 곽 교수는 서울대병원 소아응급실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의료진의 아동학대 신고의 중요성과 이를 위한 환경 조성에 대해 꾸준히 발언해 왔다. 곽 교수는 의료인의 아동학대 신고가 원활히 이뤄지려면 “의료인·전담공무원·경찰에 대한 교육, 신고 시 비밀보장, 관련 예산 확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인들이 아동학대를 적극적으로 신고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일선에 있는 의료인들이 봤을 때 비밀보장이 잘 안 될 거라고 보는 시선이 가장 크다. 2019년께 직접 겪은 일이다. 아동학대라고 신고하니 한 아보전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 ‘신고해주셔서 감사한데, 내용상 병원에서 신고했다는 걸 숨길 수가 없다. 선생님 이름은 말 안 해도 병원이 신고한 건 밝혀질 수밖에 없으니 이해해달라’는 식이다. 신원이 노출됐을 때 가해자의 고소 등을 염려하기도 한다. 특히 개원의 선생님들 같은 경우 신원 노출 우려가 더 클 수밖에 없다. 개원의는 일종의 자영업자다. 혹시 아동학대가 아닌데 실수로 학대라고 신고했다가 맘카페에 한줄이라도 욕하는 글이 올라오면 운영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비밀보장이 왜 안 된다고 보나.
“아동학대특례법(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신고인의 인적사항이나 신고인임을 미뤄 알 수 있는 사실을 알려주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긴 하다. 그러나 조항이 있다고 꼭 지켜지는 건 아니다. 아동학대를 경찰에 신고했는데 정복 입은 지구대 순경이 응급실에 찾아와 ‘아이 때린 부모 어딨냐’ ‘신고한 의사 어딨냐’고 찾는 경우도 있다. 접촉 사고나 단순폭행 수준으로 생각하는 셈이다. 또한 의료인이 신고할 경우, 아무래도 의료 관련 전문적인 얘기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의 신분 노출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비밀보장을 위해 전담 공무원 및 경찰들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또 아동학대 신고가 이뤄지지 않는 원인이 있다면?
“교육 문제도 있다.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인이 받는 정규 교육에 아동학대 판단 방법이나 신고절차, 신고요령 등이 포함돼 있지 않다. 많은 의료인들이 아이 이름이나 성별만 신고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집 주소다. 공무원이 바로 집에 찾아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 주소도 모른 채 신고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가해자를 몰라도 신고할 수 있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산불났을 때 불 난 사람을 몰라도 신고할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 대형병원 등 의료기관에서도 아동학대를 취약계층과 묶어 1년에 3시간 정도 온라인 수업만 이뤄지고 있다. 개원의의 경우 학회 출석 안 하면 따로 배울 기회도 없다.”
-신고해도 의료인에게 보탬이 되는 게 없는 건가.
“사실 그렇다. 신고하면 경찰이나 공무원이 찾아와 자기 시간을 따로 내며 진술서를 쓰고 진단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인 부모의 명예훼손 고소나 개인정보 유출이 걱정돼 아예 신고 안 하는 의료인도 많다. ‘돈 안 되고 귀찮은’ 행정적 문제에 휘말리는 게 싫은 거다. 좋은 경험이 축적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하다못해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한 차를 신고해도 잘 처리됐다고 문자가 온다. 그런데 아동학대를 신고해도 어떻게 처리됐는지 의료인은 알 수가 없다. 경찰에게 물어도 의료인은 민사상 당사자가 아니라서 통보해줄 의무가 없다고 한다. 신고가 잘 처리돼도 의료인이 알지 못해 뿌듯함을 느끼기도 어렵다. 그러나 신고한 뒤 불이익을 당하면 당사자가 대번 안다. 잘 된 경험은 공유가 안 되고, 잘 안 된 경험만 공유된다. 신고를 점점 꺼리게 되는 구조다. 한 번 신고한 뒤 ‘절대 안 한다’는 의료인이 많다.”
-어떻게 해야 할까.
“쉽지 않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돈’이다. 국가가 나서서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유관기관끼리 교류하며 원활한 협조체계와 협의체를 꾸리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각 지역별로 경찰과 의료진, 담당 공무원들이 모여 수시로 정보교환을 하며 아동학대에 관한 상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서로 전문성이 쌓인다. 본인이 직접 신고하기는 껄끄러우니, 소아과 의사가 영유아를 검진할 때 쓰도록 아동학대 관련 항목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특정 점수가 넘으면 관련 공무원이 볼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각 병원별 아동학대 관련 교육책임자를 양성하거나 아동학대 전문병원을 만들어 아동학대 발생 시 전원(병원을 옮김)하는 방안도 있다. 모두 예산이 든다. 그러나 정책을 제안해도 정부는 아동학대 방지에 돈을 쓸 생각이 없다. 아동 얘기는 (가정의 달인) 5월에만 나온다.
경각심을 높이는 방법도 있다. 과태료 인상이나 벌금 부여다. 미국이나 호주의 일부 주는 의사들이 아동학대를 미친 듯이 신고한다. 자칫 신고하지 않으면 의사면허가 정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신고하지 않으면 과태료 500만원을 내긴 한다. 과태료를 높이거나 벌금형까지 부여해 의사면허 정지가 되도록 하면 경각심은 커질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대안은 아니다. 국가가 예산을 투입해 의료인과 공무원 등 관련자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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