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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에 배상하라’ 1심 판결 톺아보니…

등록 2021-01-12 09:24수정 2021-01-12 09:39

[뉴스AS]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한국 법원의 판결이 나온 8일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앞에 놓여 있던 피해자들의 사진.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한국 법원의 판결이 나온 8일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앞에 놓여 있던 피해자들의 사진. 연합뉴스

“피해자들이 ‘위안부’로 고통받은 기간, 피해자들이 귀국 후 겪은 사회적·경제적 어려움, 불법행위 이후 상당기간 피해 복구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하면 일본이 지급해야 할 위자료는 적어도 1억원 이상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한국 법원에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정부의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는 위안부 피해가 일본의 반인도적 범죄이며,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만으로 그 법적 책임을 덜어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 “1946년 당시 인신매매 금지한 일본 형법과 국제조약 위반”

11일 고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1심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일본제국은 피해자 등을 기망하거나 강제로 연행해 ‘위안부’로서의 생활을 강요했고, 이들은 나이 어린 여성임에도 가족과 헤어져 위험하고 혹독한 환경에서 성행위를 강요당했다”며 일본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또 위안소 운영 등이 1946년 공포 당시 일본 헌법에 근거하더라도 각종 조약과 국제법규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일본은 그 당시 비준한 헤이그 육전협약을 위반해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해 그 명예와 권리를 존중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다수 인신매매 금지 관련 국제조약과 일본 형법을 위반했고, 일본제국 정부도 “이를 적극 조장하거나 방조했다”고 밝혔다. 일본의 행위가 불법점령 중이던 한반도에서 행해진 ‘주권적 행위’라고 해도, 반인권적 전쟁범죄는 ‘타국 법원에서 재판받지 않는다’는 주권면제 이론을 적용해선 안 된다고 본 근거다.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이 “원고들에게 1인당 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8일 오전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이 “원고들에게 1인당 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8일 오전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1965년 협정-2015년 합의 “정치적 합의일 뿐…개인 청구권 남아있어”

1965년 청구권 협정과 2015년 위안부 합의는 ‘정치적 합의’일 뿐, 피해자 개인에 대한 사법적 책임은 남아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청구권협정은 불법적 식민지배의 배상 청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한일 양국간 채권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정의한 뒤 “청구권협정 협상 과정에서 일본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했다”며 개인의 배상 청구권이 남아 있다고 봤다.

2015년 합의에 대해서도 “한-일 양국간 ‘위안부’ 문제에 관해 국가 대 국가로서 정치적 합의가 있었음을 선언하는데 그친 것”이라며 “이 합의는 한-일의 첨예한 갈등이 존재하고, ‘위안부’ 피해자의 피해 회복 문제를 다루면서도 국무회의 심의나 국회 동의 등 헌법상 조약체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이 합의에 의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 주권면제 ‘이탈리아 페리니’ 사건…일본도 국내법으로 주권면제 예외 인정

재판부는 주권면제 이론의 ‘예외’ 사례로 이탈리아 ‘페리니(Ferrini) 사건’도 제시했다. 1944년 독일 군수공장에서 강제노역을 했던 이탈리아인 페리니는 1998년 이탈리아 지방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1·2심에서 국가면제 이론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이탈리아 대법원은 “강행규범을 위반한 국제범죄에 해당하는 국가 행위엔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그 뒤 같은 취지의 판결이 계속 나오자 독일은 유엔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고, 2012년 재판소는 “국가면제 원칙에 따른 권리는 해당 국가가 국제적 책임을 진다거나 배상 의무가 있는지와는 분리되는 문제”라며 “현 상태(2012년 당시)의 국제관습법 하에서 국가면제론은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2014년 이를 다시 뒤집어 “국가면제는 인간 존엄과 가치, 사법에의 접근권을 근간으로 하는 이탈리아 헌법 질서의 기본적 가치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탈리아 헌재 판단 뒤 7년이 지나, 한국의 재판부는 이 사례를 토대로 “(위안부 사건도) 일본에 의해 계획적·조직적으로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 국제 강행규범(국제 사회가 보편적으로 지켜야 할 가치)을 위반해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설시했다. 더불어 국가면제 원칙은 “항구적이고, 고정적 가치가 아니라 국제 질서 변동에 따라 계속 수정되고 있다”며 일본 역시 ‘외국 등에 대한 우리나라의 민사재판권에 관한 법률’로 국가면제의 예외사유를 정하고 있는 점을 강조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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