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위안부 판결, 한일관계 접근보다 ‘개인 시민권 회복’ 의미”

등록 2021-01-12 20:19수정 2021-01-13 02:43

이상희 민변 ‘위안부 TF’ 변호사 인터뷰
이상희 변호사 사진 제공
이상희 변호사 사진 제공

“할머니들이 일본에 사실 인정과 공식적인 사죄를 요구하는 건 다신 전쟁하지 말라는 거예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일본군 ‘위안부’ 문제 대응 티에프의 이상희 변호사는 12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가진 의미에 집중해달라”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8일 한국 법원의 판결로 ‘한-일 관계가 또다시 위기를 맞이했다’는 인식도 경계했다. 선고 전날부터 일본 기자들은 이 변호사에게 강제집행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문의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가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한 질문이었다. 이 변호사는 이를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의 트라우마”로 해석하며 일본 기자들에게 되물었다. “일본 정부에 판결 이후 (배상을) 어떻게 이행할지 물으세요.”

이 변호사는 “국제질서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바뀌는 시점에 일본 정부는 한국 법원의 판결을 어떻게 수용할지, 일본 국민을 어떻게 설득할지 등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그러나 한국 법원의 판결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검토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한-일 양국 간의 청구권협정으로 합의했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어서 위안부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떠오르는 것을 꺼려 제소 자체를 안 할 수도 있다”면서도 “‘페리니 사건’ 선례가 있지만 두 사건을 단순 비교하기 어려워 비관적이진 않다”고 내다봤다. 1944년 독일 군수공장에서 강제노역을 했던 이탈리아인 페리니는 1998년 이탈리아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2심에선 국가면제 이론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대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했다. 독일의 제소로 심판에 나선 국제사법재판소는 국가면제 이론을 인정하며 독일의 손을 들어줬지만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이를 다시 뒤집었다. 이 변호사는 “페리니 쪽 변호사에게 이탈리아 대법원 판결 뒤 이탈리아 내부 갈등이 있었냐고 물었지만 별일 없었다고 했다. 우리도 한-일 관계 위기론에 과도하게 휘둘릴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한국 정부에 “한-일 관계로만 좁게 보지 말고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잡고 아시아 국가들과 위안부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지혜를 가졌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제1473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리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제1473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리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그동안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 법원에 4차례 민사소송을 냈으나 모두 기각되거나 각하됐다. 미국 등 다른 나라 법원에 낸 소송도 마찬가지였다. 이 변호사는 “재판받을 권리를 인정한 이번 판결로 위안부 피해자들은 온전한 시민권을 취득했다”고 평가했다. 이 변호사는 “국제법 체계에서 국가나 무장단체에 의해 인권 침해를 당한 피해자를 어떻게 구제할지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되던 상황에서 한국 법원의 판결에 따라 관행이 바뀔 수도 있었다”며 “재판부는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해선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며 위안부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 침해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2015년 한-일 정부 간 합의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추상적으로 ‘불쌍한 존재’, ‘금전적으로라도 배상을 받아야 하는 존재’에서 사과를 받은 것 같기도 하고 배상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모호한 존재”로 만들었다고 했다. “왜 인권적으로 문제가 됐고, 왜 사죄를 받지 못했는지 우리도 공부해야 한다”고도 했다. 또 “선고 뒤 일본 주재 한국대사를 초치하는 등 일본 정부의 제스처에 지레 겁먹지 말자”고도 했다. “더 이상 공론화하지 말라고 하면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 침해 피해자 누구도 말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의 원고 승소 판결이 나온 뒤, 민사15부(재판장 민성철)는 이용수 할머니 등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서 13일 예정된 선고를 연기했다. 이 사건을 맡고 있는 이 변호사는 “재판 때 충분히 입증했고 재판부가 궁금해하는 내용을 정리해 최대한 제출했다. 그런데도 선고 이틀 전 갑자기 변론 재개를 통보한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어 “직전 판결이 갖는 의미가 워낙 중차대해 무시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했다. 원고인 이용수 할머니는 “나라가 없어서 위안소에 끌려갔는데 왜 지금은 나라가 있는데도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느냐”고 자주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한국 법원의 판단은 늦었지만 의미는 크다. 이 변호사는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사법부가 울타리를 만들어주며 ‘여기 들어와라’, ‘우리가 보호하겠다’고 선언했다”고 말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봄맞아 물 빨아올린 버드나무 40그루 벤 뒤…5만평 모래톱 파괴 1.

봄맞아 물 빨아올린 버드나무 40그루 벤 뒤…5만평 모래톱 파괴

“나는 장발장, 홍세화 선생은 등대였다”…이틀째 조문 행렬 2.

“나는 장발장, 홍세화 선생은 등대였다”…이틀째 조문 행렬

112에 ‘말 없는 SOS’ 365번…“살고 싶다” 지적장애인 극적 구조 3.

112에 ‘말 없는 SOS’ 365번…“살고 싶다” 지적장애인 극적 구조

‘똘레랑스’ 일깨운 홍세화 별세…마지막 당부 ‘성장에서 성숙으로’ 4.

‘똘레랑스’ 일깨운 홍세화 별세…마지막 당부 ‘성장에서 성숙으로’

골프 접대에 금품수수 의혹 이영진 헌법재판관, 2년 만에 불기소 5.

골프 접대에 금품수수 의혹 이영진 헌법재판관, 2년 만에 불기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