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거의 벼랑 끝인데….”
경북 안동에서 15년째 ‘패션그룹 형지’의 브랜드 매장인 샤트렌과 크로커다일레이디 두 곳을 운영 중인 권해숙(49)씨는 1월 부가세 신고를 준비하며 매일 한숨을 쉰다. 지난 11일 본사가 매장에 있는 재고를 지난해 12월 반품 처리한 걸 뒤늦게 발견했기 때문이다. ‘반품 처리’는 권씨가 본사에 옷을 판 것으로 처리돼 매장의 매출이 증가하고, 본사의 매입이 늘어남을 의미한다. 이는 매장이 내야 할 부가세가 늘어나고, 본사가 내야 할 세금이 줄거나 본사가 환급받을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매년 7월 부가세를 내고 1월에 환급을 받아 수지를 맞춰온 권씨에게 이는 청천벽력이다. 코로나19로 매출이 3분의 1로 떨어지고 임대료까지 밀려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에 환급을 받아 밀린 임대료를 내려했다.
“옷을 많이 팔지도 못했는데 지난해 초 회사의 반품 처리로 매출이 늘어 7월 부가세를 1600만원 넘게 냈어요. 올해 1월 그만큼 환급 받을 수 있으리라 회사를 믿고 낸건데 오히려 1000만원 넘게 세금 내게 생겼어요.”
형지의 갑작스러운 ‘반품 처리’로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점주들의 시름이 커졌다. 크로커다일레이디와 샤트렌 등 30개 넘는 의류 브랜드를 갖고 있는 형지의 매장 수는 전국 2000여개에 이른다.
형지의 이번 결정에 500개 넘는 매장의 점주들이 영향을 받는다. 점주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건 그동안 본사와 점주들 사이에 유지되던 ‘신사협정’이 깨졌기 때문이다. 개인사업자인 점주들은 매년 1월과 7월 부가세를 신고·납부한다. 그동안 점주들은 매년 10월께 본사로부터 겨울옷을 매입해 이듬해 1월 부가세 환급을 받아왔다. 1월에 세금을 많이 낸 본사는 대신 2~3월에 겨울옷을 반품 처리해 7월에 세금을 환급받고, 점주들이 세금을 많이 냈다. 점주들 입장에선 10년 넘게 반복돼온 ‘세금-환급’ 순서가 ‘세금-세금’ 순서로 바뀐 것이다. 권씨는 “세금-환급, 순서가 10년 넘게 이어졌는데 예상치 못하게 세금-세금 순서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물론 1월에 세금을 많이 내는 만큼 점주들이 내야 할 7월 부가세는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당장 돈이 급한 점주들은 “본사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상 어려움 때문에 1월에 빨리 환급을 받으려 점주들에게 피해를 전가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10년째 샤트렌 매장을 운영해온 40대 점주 ㄱ씨는 “본사도 사정이 어려울 거다. 그러나 이번에 당장 환급을 통해 자신들 숨통을 틔운 셈이다. 사전에 설명 없이 피해를 우리에게 전가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점주 ㄴ씨도 “당장 한시가 급한데 들어와야 할 돈이 안 들어와 문제다. 회사가 우리 돈을 당겨썼다”고 말했다. 형지 브랜드 인트라넷 게시판에도 “본사만 살겠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을 했다” “돈이 씨가 말라 하루하루 겨우 버티는데 7월 말에 내야할 세금을 왜 미리 내야 하나” 등 점주들의 항의글이 올라왔다. 한 세무법인 관계자는 “점주들이 내야 할 7월 부가세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 ‘조삼모사’ 격이긴 하다”면서도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본사가 대리점에 당장의 문제를 전가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형지 관계자는 “당초 본사에서는 대리점에 상품 공급가를 최초가로 산정했으나, 시즌 중 할인이 들어가는 경우 매입 시점의 조정된 가격으로 산정하기로 했다. 세무기관에서 기존 방식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 이번 기회에 바로잡았다. 다만 대리점과 사전 협의가 다소 미흡했고 급히 시행하다보니 미처 전산시스템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여서 대리점 사장님들께 혼란을 드렸다”며 “7월에는 점주들이 환급 받는 형태가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경영상 어려움 때문에 방식을 바꿨냐”는 <한겨레>의 질문에 형지 관계자는 “우회적으로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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