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 폭발로 화상을 입은 필리핀 이주노동자 이멜다가 25일 얼굴과 몸에 붕대를 감고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에 누워 있다.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필리핀인 모빌라 이벨다 “기다리는 세 딸 있는데…”
“필리핀에서 나만 기다리고 있는 세 딸이 있는데…. 돈 많이 벌어서 곧 간다고 했는데….”
3도 화상으로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한강성심병원에 누워 있는 모빌라 이멜다(43)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됐다. 영어와 서툰 한국말을 섞어가며 겨우 말을 이은 그는 “곧 필리핀으로 쫓겨갈 텐데, 병원비는 어떻게 하냐”고 걱정했다.
그는 22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자신의 집 근처 다른 필리핀 불법체류자 호로라도(29)와 마리살(26) 부부의 집에 놀러 갔다가 휴대용 버너의 부탄가스가 폭발하면서 화상을 입었다. 호로라도 부부는 더 심한 화상을 입어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다.
이멜다는 2000년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입국했다. 그는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지만 필리핀에서는 직업을 구하기 힘들어 ‘부자 나라’ 한국에 왔다”고 했다. 그러나 인쇄공장, 단추공장, 양말공장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일해도 한 달에 70만~80만원 벌이가 고작이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인 세 딸에게 50만원을 보내면 한국에 올 때 비행기삯 등으로 빌린 350만원을 갚기도 힘겨웠다. 보증금 없는 월세 15만원짜리 단칸방이 그의 보금자리였다. 하지만 지난해 3월 불법체류자가 된 뒤 양말공장에서 쫓겨나고 두 달 넘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방세마저 밀리기 시작했다.
성수동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생활용품을 파는 이봉순(32)씨는 “필리핀 친구들은 ‘가정용 엘피지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휴대용 버너를 사용했다”며 “언제 단속을 피해 도망쳐야 할지 모르는 그들에겐 가스 설치도 사치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건강보험도 없는데 사고 직후 5시간 동안 치료받았던 한양대병원에서만 병원비가 130만원 나왔다”며 23일부터 필리핀 사람들이 자주 가는 상점과 성당에서 이들을 돕기 위한 모금을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 참 친절했는데…. 필리핀으로 추방당하기 전에 꼭 한 번 한국 친구들과 삼겹살과 감자탕에 소주 한잔 먹고 싶어요.” 이멜다의 한국에서의 마지막 꿈이다. (도움 주실 분: 하나은행 769-810002-47407 이봉순)
유선희 최은주 기자 duc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