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지 않아도 보호자가 생기면 좋을 것 같아요. 나중에 나이가 들었을 때 아프면 병원에서 누가 보호자 서명을 해줄 수 있을지가 가장 걱정돼요.”
비혼주의자라고 밝힌 취업준비생 우지원(26)씨는 “결혼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도 의료, 주거 등 최소한의 보호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50대 이후 친한 동성 친구 몇몇과 함께 살고 싶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가족처럼 함께 살아갈 수 있는데,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여성가족부(여가부)가 비혼이나 동거 등 기존 정부 정책에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가구를 가족으로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히면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공존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정비하고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는다.
복지·주거·의료 혜택 등 사회안전망 대부분이 ‘이성 부부와 자녀’ 중심으로 짜인 우리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어온 이들은 여가부의 발표에 기대감을 내비친다. 동성 연인과 8년째 동거 중인 조아무개(35)씨는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때, 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을 때,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부여받지 못할 때 등 오랜 기간 동거를 해도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없어 불편한 점이 많았다”며 “이번 여가부 발표는 ‘정상가족’ 환상을 깨고 동거에 대한 보호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양성애자인 송초롱(34)씨는 “재산부터 사후 장례를 치를 때까지 모든 문제가 혼인 관계를 중심으로 돼 있어, 다양한 주거 공동체 관계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정부가 가족의 인정 범위를 넓히면 법적 보호뿐 아니라 성소수자나 동거에 대한 사회 인식도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도 품는다. 송씨는 “성소수자끼리 동거를 위해 주거 계약을 할 때 이상하게 여기는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많다 보니, 혐오를 드러내지 않는 부동산을 성소수자끼리 알음알음 소개해준다”며 “정부가 가족 범위를 넓게 인정하고, 나아가 생활동반자법이 만들어지면 이러한 생활 속 차별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에서 동거인 비자를 통해 연인과 동거한 김아무개(27)씨는 “현지인과 같은 등록금을 내는 등 제도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었고 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 법적·제도적인 보호를 받는다고 느꼈다”며 “국내에서도 결혼 외에도 국가로부터 관계를 인정받을 수 있는 다른 선택지가 이제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가부의 이번 발표는 1인가구가 늘고 혼인 비율, 유자녀 가정이 점점 줄고 있는 현실에서 나왔다. ‘다양한 가족’이 현실화되려면 민법, 가족관계법 개정과 생활동반자법 제정 등의 입법이 필요하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3~4인 가족이라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들어간 이들만이 복지, 주거, 세제, 의료 혜택을 독점하고 있다”며 “이번 여가부 발표는 1~2인 가구 증가 등 시대적 변화를 잘 수용한 방안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어느 정도까지 법제화될 수 있을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김윤주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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