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에게 임명장을 주기 앞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이 “합헌”이라고 결정했지만, 3명의 재판관이 남긴 소수의견에 다른 수사기관과의 견제·협력 및 중립성 확보 등에 관한 향후 과제가 담겨 눈길을 끈다.
31일 헌재의 결정문을 보면, 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공수처가 권력분립과 적법절차 원칙 면에서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수처장의 사건 이첩 요청 권한이 대표적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장이 이첩을 요청하면 해당 수사기관은 여기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세명의 재판관은 “처장의 일방적인 이첩 요청 권한을 통해 실질적으로 (검찰·경찰 등) 행정부 내 수사기관 사이에서 우위를 차지해 상호 협력적 견제관계를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수사기관이 공수처 이첩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더라도 별도 협의 또는 조정 통로가 없는 상황이어서 “처장의 자의적 이첩 요청 권한을 통제할 아무런 규정이 없다”고 우려한 것이다. 세 재판관은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마약단속국(DEA), 국세청(IRS) 등에서 사건이 중첩되면 각 사건별로 협의 절차를 거치거나 양해각서를 체결해 구체적 이첩 기준을 정하고 있다는 점과, 공수처와 유사한 영국의 중대부정수사처(SFO)도 이첩을 받을 경우 기본협약에 따라 상호 협의를 거치고 있다는 점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긴급 출금 사건이 공수처 이첩 1호 사건이 될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데,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 28일 “헌재 결정문을 분석해 향후 입장을 밝히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공수처장의 이첩 권한이 피의자 권리 침해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세 재판관은 “사건이 공수처로 이첩되어도 사건 관계인은 별도 통지를 받지 못해 의견 진술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다”라며 “공수처법은 다른 수사기관에 이첩 요청에 응할 의무만 부과할 뿐 피의자 방어권 행사를 보장하는 어떤 규정도 두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세 재판관은 공수처 소속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직무상 독립에 관한 규정에도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공수처장 추천 및 공수처 인사위원회 구성에 국회 교섭단체가 추천한 4명이 포함돼 정치적 영향을 받게 되고, 공수처 검사 임기도 검사·판사보다 훨씬 짧은 3년이어서 신분보장이 취약해 독립성 확보가 쉽지 않을 것으로 우려했다.
세 재판관은 공수처가 수사 축소·은폐를 할 위험이 있는 사건의 경우 이를 견제할 수단이 재정신청(검사가 불기소 결정을 내릴 경우 여기 불복해 법원에 공수처 결정의 타당성을 묻는 제도) 외엔 마땅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공수처법상 고소·고발 사건에 대해서만 재정신청이 가능한데 다른 수사기관에서 이첩받은 사건에 대해서는 축소 수사나 공소권 남용을 막을 통제수단이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공수처가 수사권·공소권을 모두 가진 만큼 이에 대한 책임 장치도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세 재판관은 “공수처는 행정부 소속이지만 대통령에게 아무런 사전·사후 통제를 받지 않는다. 처장의 지휘·감독을 받을 뿐 검사와 달리 법무부 장관의 통제에서도 벗어나 있다”고 짚었다. 또 공수처장이 국회에 출석해 보고·답변할 의무는 있지만 ‘수사,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라는 조건 등이 달려 국회(입법부)의 견제에도 한계가 있다고 봤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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