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성소수자를 놓고 ‘독특한 성적 취향 때문에 다수로부터 차별받는 대상이 되기 쉽다’고 표현한 교과서를 놓고 “차별을 조장하는 내용”이라는 의견을 교육부에 표명했다. 인권위는 김아무개씨가 진정한 ‘교과서의 성소수자 혐오 표현으로 인한 차별’ 사건을 기각하면서 “’교과서 검정과정에서 차별을 조장하는 표현이 기술되지 않도록 검정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교육부장관에게 송부했다”고 31일 밝혔다. 의견 표명은 ‘이행 계획’을 제시해야 하는 ‘권고’와는 다르지만, 제도적인 측면에서 개선이 필요할 때 취하는 조처다.
진정인 김씨가 문제 삼은 교과서는 2019년 고등학교 ‘생활과 윤리’ 과목 교과서로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기반해 있고, 2013년 교육부 검정을 통과했다.
이 교과서에는 성적 소수자의 인권과 관련된 내용이 들어가 있는데, ‘성적 소수자’를 “신체적 또는 문화적 특징 때문에 성적으로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과 구별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독특한 성적 취향 때문에 다수로부터 차별받는 대상이 되기 쉽다”고 설명했다. ‘동성애’를 놓고선 “동성 간의 성적 접촉이나 결합”으로 정의했다. 김씨는 이를 놓고 “성적 소수자를 기술함에 있어 성적 소수자에 대한 평등권 침해의 내용을 담고 있어 차별에 해당된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진정을 접수한 인권위는 “‘성적 지향’이 아닌 ‘성적 취향’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정체성이 마치 선호의 문제 또는 선택 가능한 문제인 것처럼 기술해 성적 소수자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교과서의 동성애 정의에 대해 인권위는 “‘동성 간의 사랑’ 또는 ‘동성에 대한 사랑’이라는 포괄적 의미와 달리 ‘성적 접촉이나 결합’만으로 축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과서에는 “동성 결혼, 어떻게 생각하나요?”라는 주제로 찬성과 반대 주장이 각각 4개씩 서술돼 있는데, 반대 입장에는 “동성에는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질병이다” “비정상적인 성행위로 에이즈와 성병을 확산시킨다” “동성 부부는 아이를 낳지 못해 인구가 감소한다” “동성 부부가 아이를 입양할 경우 입양된 아이들은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과 고통을 겪는다” 등의 입장이 담겼다. 인권위를 이를 놓고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며 “성적 지향이라는 정체성을 평가의 대상 또는 찬성과 반대의 대상으로 삼아 다른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과 구별하게 할 소지가 크다”고 분석했다.
다만, 인권위는 2015년 개정 교육과정 기반의 ‘생활과 윤리’ 교과서가 상용화되면서 해당 교과서가 2020년부터는 더는 사용되지 않고, 관련 내용도 삭제된 점을 들어 김씨의 진정을 기각했다.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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