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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트랜스젠더 67% “수업 중 교사가 성소수자 비하하는 발언 들어”

등록 2021-02-09 14:32수정 2021-02-09 16:23

인권위, 트랜스젠더 591명 대상 설문조사 진행
학교·직장 등 사회는 물론 가족에게도 외면받아
각종 차별·혐오 탓에 우울증·공황장애 진단
퀴어문화축제 현장. 한겨레 자료사진.
퀴어문화축제 현장. 한겨레 자료사진.

트랜스젠더(출생 시 지정된 성별과 다른 성별 정체성을 지닌 사람)가 학교·직장·가족생활 등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심각한 차별과 혐오를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 중 65.3%가 최근 1년 동안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 또는 본인의 성별표현 때문에 차별을 겪었다”고 답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기관 최초로 숙명여대 산학협력단과 함께 진행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결과를 9일 발표했다. 이번 실태조사에는 트랜스 여성(출생 성별은 남성이지만 여성으로 정체화) 189명, 트랜스 남성(출생 성별은 여성이지만 남성으로 정체화) 111명, 논바이너리(남성과 여성을 구별하는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 지정성별 여성 221명, 논바이너리 지정성별 남성 70명 등 한국에 거주 중인 만 19세 이상 트랜스젠더 591명이 2020년 10월7~31일 온라인 설문조사 방식으로 참여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588명 중 501명(85.2%)이 지난 12개월 동안 차별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트랜스젠더 정체성 또는 본인의 성별표현 때문에 차별을 겪었다고 답한 이들이 65.3%로 가장 높았다.

3명 중 1명 “가족에게 정체성 숨겨”

트랜스젠더 3명 중 1명은 가족에게도 정체성을 숨기고 있었다. 591명 중 203명(34.4%)이 ‘가족 중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응답했다. ‘(가족이) 반대하거나 무시한다’고 답한 참여자는 152명(25.7%), ‘지지하지도, 반대하거나 무시하지도 않는다’는 96명(16.2%)으로 나타났다. ‘지지해준다’고 답한 사람은 140명(23.7%)이었다.

가족이 본인의 정체성을 알고 있다고 답한 373명은 △(가족들이) 모른 체하거나(56.6%) △본인이 원하는 성별표현을 못 하게 하거나(44.0%), △언어적 폭력(39.4%)을 당하거나 △오랜 시간 동안 대화하지 않으려고 했다(27.9%) 등의 경험을 겪었다고 답했다. 이밖에 신체적 폭력을 당했거나, 집에서 내쫓긴 경험도 각각 10.5%, 9.4%로 집계됐다.

응답자들은 학교에서도 혐오와 차별을 겪었다. 중고등학교에 다닌 경험이 있는 584명 중 539명(92.3%)이 성소수자와 관련한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성별 정체성에 맞지 않는 교복 착용 등으로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응답자 585명 중 67%가 수업 중 교사가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고, 21.3%는 교사로부터 폭력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답했다. 대학교나 대학원을 다녔던 469명 중 198명(42.4%)이 교수나 강사로부터 성소수자 비하적인 발언이나 행동을 접했다고 밝혔다.

57.1% 구직 포기 경험

구직 활동과 직장 생활에서도 차별을 겪었다고 응답한 트랜스젠더도 상당수였다. 최근 5년간 구직 활동 경험이 있는 469명 중 268명(57.1%)은 성별 정체성과 관련해 구직 포기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48.2%(226명)가 구직·채용 과정에서 외모가 남자 또는 여자답지 못하다고 지적받았다고 답했다. 이밖에 재직 중인 직장에서는 △용모·말투가 남자 또는 여자답지 못하다고 지적(26.6%)받거나 △성별 정체성이 본인의 동의 없이 알려지고(8.9%) △성희롱 또는 성폭행(8.2%)을 당하기도 했다.

화장실과 같은 공공시설 이용에서도 성 정체성으로 인해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589명 중 241명(40.9%)이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부당한 대우나 불쾌한 시선이 두려워 자신의 정체성과 다른 성별의 화장실을 이용했다고 답했다. 이들은 △음료·음식을 먹지 않거나(39.2%) △남녀공용이나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하거나(37.2%) △화장실 이용을 포기(36.0%)하는 방법으로 화장실 이용을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출생 시 성별인 남성인 트랜스젠더는 군 생활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 군 복무 중이거나 군 복무를 마친 응답자 109명 중 63명(58.3%)이 공동 샤워시설을 이용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고, 57명(52.8%)은 자신의 정체성이 알려질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7.1% 우울증, 24.4% 공황장애

응답자 591명 중 177명(30%)이 본인의 건강이 전반적으로 나쁘다고 밝혔고, 2019년 한 해 동안 590명 중 337(57.1%)명이 우울증, 143명(24.4%)이 공황장애 진단 또는 치료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조사에 참여한 트렌스젠더는 △성별 정체성을 존중하지 않는 초중고 교육과정 △포괄적 차별금지법 부재 △성별 정보가 포함된 주민등록번호 △동성결혼이나 입양 등 성소수자의 가족구성권 미보장 등을 성소수자와 관련된 제도적 차별로 꼽으며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숙명여대 산학협력단은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한국의 트랜스젠더는 여러 삶의 영역에서 심각한 혐오와 차별을 경험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법, 정책, 제도는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며 “각 영역에서 혐오와 차별을 금지·예방하고 인권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조처를 적극적으로 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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