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 <한겨레> 자료사진
‘사법농단’ 사태에 연루돼 법관으로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소추된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심판이 지연되면서 헌법재판소의 빠른 재판 진행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참여연대는 “임성근 판사에 대한 탄핵은 임성근 개인의 차원이 아닌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의해 자행된 사법농단의 일환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며 국회의 탄핵심판청구를 헌재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취지로 지난 4일 헌법재판소에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7일 밝혔다.
참여연대는 임 전 부장판사가 탄핵 사건 주심 이석태 재판관을 기피신청한 점도 비판했다. 임 전 부장판사는 이 재판관이 과거 세월호 특조위원장 활동한 점과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을 한 이력을 들어 불공정한 재판이 우려된다며 기피한 바 있다. 그러나 참여연대는 “국가기관의 기관장으로 활동한 것과 15년 전 단체 회장으로 활동한 것을 이유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객관적 사정으로 인정되기 어렵다”며 “(기피신청은) 탄핵심판을 지연시킬 의도로 제기된 주관적 의혹에 불과하다. 정지된 변론을 즉각 재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의견서를 대표집필한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는 “‘파면’이라는 탄핵 결정의 효력 발생시기를 (임 전 부장판사의) 임기만료일인 2021년 2월28일로 소급해 주문에 명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탄핵심판이 청구된 공무원이 임기만료 등을 들어 헌법적 제재를 빠져나가는 사태를 막고, 국회의 탄핵소추 취지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법관 지위를 가졌던 마지막 시점을 기점으로 탄핵 결정을 내리자는 취지다. 이미 법복을 벗은 임 전 부장판사에 대해 “법관 임성근을 파면한다”가 아닌 “법관 이성근을 2021년 2월28일자로 파면한다”라고 하는 등의 새 주문결정을 제안한 것이다.
이런 제안은 지난달 28일 임 전 부장판사의 법관 임기가 만료됐기 때문에 법관 신분이 아닌 상황에서 탄핵심판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인 셈이다. 탄핵심판은 공무원에 대한 일반 징계절차와 달리 “사법부 고위 공직자들의 헌법위반을 경고하고 방지하며, 사후적으로는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공직자의 권한을 박탈함으로써 헌법을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미국 연방의회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 만료로 퇴직했는데도 최근 탄핵심판을 진행했다. 그의 재직 중 행위에 대한 책임을 추궁해 헌법규범을 보전·보호하고, 대통령의 어떤 직무행위가 앞으로 탄핵 가능한 행위가 될 것인지 보여주는 지표를 마련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상희 교수는 “우리 대법원도 임기 만료로 (공직자가) 법률상 지위를 상실할 경우에도, 사정에 따라 특별한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되면 그의 지위가 계속될 수도 있음을 인정했다”며 “임 전 부장판사 탄핵심판 사건은 전직 법관의 위헌적인 직무수행행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헌법적 요청에 따라 이뤄졌기 때문에 탄핵심판 결정을 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조처”라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또한 임 전 부장판사의 ‘세월호 7시간’ 명예훼손 사건 등 재판 개입은 사법농단을 빼놓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한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았을 때, 임 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서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 지시를 받아 판결문 초고를 수정하거나 판결문 구술본 수정 등을 요구했다. 한 교수는 임 전 차장이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곽병훈 전 민정비서관과 의사소통하던 과정에서 이같은 재판 개입 행위가 발생했던 점도 환기했다. 그러면서 “(해당) 사건 재판 결과는 청와대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를 감안하면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는 청와대 관여와 법원행정처의 중개 하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짚었다. 그의 재판 개입 행위가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관련돼 있고, 사법농단 사태의 한 축을 이뤘다는 측면에서 중대한 헌법침해가 발생했음을 지적한 것이다.
앞서 임 전 부장판사는 이와 관련한 형사재판에서 ‘판결문 수청 요청을 받은 재판부는 그 취지에 공감해 독립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라는 취지로도 주장했다. 그러나 한 교수는 “법관에 대한 근무평정권 등 사법행정권을 가진 수석부장판사라는 지위는 해당 법원에 근무하는 일반법관의 의사나 의지를 실질적으로 바꿀 힘을 가진 것이 현재 우리 법원의 관행”이라고 반박했다. “임 전 부장판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다른 법관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위력을 갖고 있었던 점은 (형사 사건) 판결에도 드러나 있다”며 이는 명백한 사법권 독립 침해라는 것이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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