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성과 때문에 해고 대상이 된 노동자가 해고사유를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회사가 서면 통지 때 해고사유를 기재하지 않은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현대중공업 직원이었던 ㄱ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환송했다고 9일 밝혔다.
미국변호사 자격이 있는 ㄱ씨는 2009년 현대중공업과 근로계약을 맺고 국제법무팀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그는 계약기간 1년이 끝난 뒤 회사와 무기한의 근로계약을 다시 체결했는데, 2012년과 2013년 근무평가에서 계약 해지가 고려될 수준의 낮은 점수를 받았다. 회사는 근무 성적을 개선할 기회를 주기로 했지만, 이듬해인 2014년 ㄱ씨는 더 낮은 점수를 받았고, 결국 2015년 1월 자로 근로계약을 끝내기로 했다.
하지만 ㄱ씨는 이를 부당해고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자신의 상사 ㄴ씨가 예전에 근무했던 법률사무소를 현대중공업 공동대리인으로 무리하게 선임했는데 이를 ㄱ씨가 반대해 ㄴ씨와 사이가 나빠지면서 낮은 근무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ㄱ씨는 또한 회사가 해고사유와 해고 시기를 명시해 서면 통보하도록 규정한 근로기준법 27조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1심과 2심은 ㄱ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은 “상사 ㄴ씨가 고의로 근무평가를 낮게 줬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계약종료 통지서에 해고사유를 기재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절차상 위법이 있다고 볼 순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ㄱ씨가 근무평가를 낮게 받아 처음 근무능력 개선 기회를 얻었을 때 이미 근로계약이 해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고, 최종적으로 계약 해지를 할 때도 회사가 그 근거를 설명한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ㄱ씨 본인도 자신의 해고사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해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면통지 시 해고사유를 기재하지 않은 이유만으로 절차 위반을 문제 삼을 수 없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해고 대상자가 해고사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사용자가 해고를 서면으로 통지하면서 해고사유를 기재하지 않은 것은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해고통지”라고 판단해 절차 위반 문제를 지적했다. 원심은 계약종료 과정에서 ㄱ씨와 회사가 협의한 내용을 토대로 절차적 문제가 없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이 정한 해고통지 방식에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1·2심은 ㄱ씨에 대한 회사의 해고사유도 정당하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이 부분은 따로 판단하진 않았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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