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에 따라 낙태 시술은 처벌할 수 없지만, 그에 따른 후유증 치료 때 허위 병명으로 요양급여를 청구한 것은 사기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업무상승낙낙태와 사기,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ㄱ씨에 대해 낙태죄를 제외한 나머지 혐의만 유죄로 보고 벌금 1천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6일 밝혔다.
ㄱ씨는 2013∼2015년 67차례에 걸쳐 낙태수술을 한 뒤 진료기록부에는 병명을 허위로 기재해 요양급여를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불법이었던 낙태수술을 하면서 ㄱ씨는 현금으로 수술비를 받았고, 수술 뒤 후유증 치료를 할 때에는 ‘상세불명의 무월경’ 등으로 병명을 기재해 요양급여를 받은 것이다. ㄱ씨는 이런 방식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148차례에 걸쳐 약 135만원의 요양급여를 편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ㄱ씨는 낙태 시술 행위와 관련해선 치료비를 공단에 청구한 적이 없고, 후유증 치료 때 의료보험을 청구한 것이라며 사기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1심과 2심은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기 전과 후에 각각 나오면서 낙태수술 관련 판단이 엇갈렸다. 2018년 2월 이 사건을 선고한 1심 재판부는 ㄱ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보고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이 판결 뒤, 여성의 승낙 또는 촉탁을 받아 낙태수술을 한 의사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 270조는 위헌이라는 헌재 결정이 나왔다. 이에 ㄱ씨 쪽은 항소심에서 “헌재가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이상 사기의 고의가 없고 위법성도 사라진 것으로 봐야 한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2심 재판부는 헌재 결정 취지에 따라 ㄱ씨의 업무상승낙낙태 혐의는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허위 요양급여 청구에 대한 사기죄는 그대로 인정했다. 국민건강보험법상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가 있는 경우’ 보험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유죄로 판단한 것이다. ㄱ씨가 요양급여를 청구할 당시 낙태는 범죄에 해당해 요양급여 청구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법원은 ㄱ씨가 이런 상황에서 낙태 수술 사실을 감추고 후유증 치료를 위한 값비싼 항생제를 처방하고자 허위 병명으로 진료기록부를 작성한 것은 사기의 고의가 있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낙태죄) 헌법불합치결정에 따라 해당 조항이 소급 무효가 된다 해도 ㄱ씨는 낙태수술과 무관한 질환을 기재해 진료기록을 냈고 공단이 여기에 속아 요양급여를 지급한 사실관계 자체는 변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모든 낙태 행위가 (헌재 결정 뒤) 곧바로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대상에 포함되는 것도 아니므로 낙태수술과 관련해 요양급여를 청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던 것도 아니”라고 덧붙였다. 다만 범행 당시부터 위헌성 논란이 끊이지 않던 낙태수술과 관련한 범행이고, 편취액도 소액인 점 등을 고려해 벌금 1천만으로 감형했다. 대법원은 이런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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