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압류 이유로 계약갱신 거부’ 패소에도 연체료에 불법거주 배상금까지 요구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16평짜리 주공 임대아파트에 사는 박아무개(48)씨는 최근 대한주택공사(주공)에서 보내 온 계약갱신 통지서를 받고 어이가 없었다. 지난 2004년 이후 2년짜리 계약갱신을 해줄 수 없다던 주공이 올해 2월에 계약갱신을 해 줄테니 그동안의 보증금 인상분에 그 ‘연체료’로 26만원을 더 내라고 통보한 것이다.
2003년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은행으로부터 임대아파트 보증금 1155만원을 가압류당한 박씨는 2004년 12월 계약갱신일이 돌아왔지만 주공의 거부로 계약을 연장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가압류당한 보증금만큼 돈을 더 내거나, 그러지 않으려면 집을 비우라고 주공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계약갱신을 안해 준 것은 주공인데 이제 와서 임대료 인상분을 늦게 내는 것에 대한 연체이자까지 물라니, 못사는 사람들 등쳐먹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지난해 12월30일 광주고법의 판결 이후, 주공은 그동안 임대아파트 보증금에 대해 금융기관 등으로부터 가압류나 압류, 채권추심 등의 결정이 나면 임대계약을 갱신하지 않던 관행을 바꿨다. 이는 광주의 임대아파트에 사는 임아무개(43)씨 등 6명이 “가압류 등을 이유로 계약갱신을 거부하는 것은 계약조건과 어긋난다”며 주공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이 세입자 손을 든 데 따른 것이다. 가압류 결정 등이 있더라도 주공으로서는 보증금 중 밀린 월세를 우선적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계약갱신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주공은 이달 초 각 지역본부에 가압류 등을 이유로 계약갱신을 거부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주공은 이런 다툼 때문에 계약갱신이 미뤄진 세입자들에 대해 그동안 오른 보증금은 물론 이에 대한 이자, ‘불법 거주’ 배상금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계약갱신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세입자가 ‘불법 거주’를 한 것이기 때문에 수십만원씩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문제가 생기면 모든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식의 각서까지 요구했다. 지난해 초 기준으로 보증금 가압류 등을 이유로 계약갱신을 거부당한 주공 임대아파트 세입자는 4천여가구에 이른다.
부산의 주공 임대아파트에 사는 권아무개(53)씨는 “임차보증금을 압류당하는 세입자들은 대부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때문에 몇십만원의 연체료도 큰 부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아무개(50)씨는 “계약갱신이 미뤄지는 상황에서도 월세는 꼬박 받아 가더니 불법 거주 배상금을 내라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본부 임동현 정책국장은 “주공이 판결을 제대로 수용하기는커녕 세입자 주거권을 외면하고 있다”며 “공기업이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위법행위를 해놓고도 적반하장이라는 것이다.
주공 주택공급처 이상기 제도담당 차장은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은 만큼 무조건 계약갱신을 해주면 채권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어 각서를 요구하고 있다”며 “연체료는 받지 않기로 방침을 정해 지역본부에 전달했고, 불법 거주 배상금도 각서를 쓰고 계약갱신을 하면 안 받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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