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상 몬시뇰 신부의 분향소. 천주교인천교구청 제공
지난해 선종한 김병상 필립보 몬시뇰 신부가 위암 판정을 고지받지 못하고 수술 가능 여부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한 것은 인권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23일 김 신부와 유가족을 피해자로 하는 제3자 진정을 조사한 결과 “당사자에게 위암 진단 사실, 수술 가능 여부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 환자의 알 권리 및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며 해당 병원장에게 주치의에 대해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김 신부는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1977년 유신헌법 철폐 요구 기도회를 주도했다. 그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공동대표와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을 지내는 등 민주화·사회운동에 앞장섰다. 지난 2018년 3월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천주교 인천교구가 설립·운영하는 요양시설에 입소했고, 인천교구 산하의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지난해 4월25일 선종했다.
진정인은 지난해 병원 주치의 등이 위암 진단을 알리지 않고 수술도 받지 못하게 했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피진정인인 주치의는 “위암 사실을 알릴지 원장과 여러 번 논의했으나 이를 고지했을 때 피해자가 겪어야 하는 스트레스·불안·우울 등으로 상태가 악화할 것을 우려해 질병 정보 등을 고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피해자를 더 잘 모시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피해자가 본인의 위암 진단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스스로 삶을 결정할만한 판단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황이라고 볼 수 없고, 피해자의 평소 건강에 대한 염려 성향을 고려한다고 해도 위암 진단 사실이 피해자의 건강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진정인은 또 피해자가 연명치료 거부 사전의향서·심폐소생술 거부(DNR) 동의서에 서명한 적이 없는데도 원장과 주치의가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았고, 가족 면회가 제한돼 고인의 인권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했으나 인권위는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기각했다. 요양원 원장이 피해자의 통장·도장·주민등록증 등을 보관해 자산을 행사할 수 없게 했고, 병원 입·퇴원 결정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진정도 제기됐으나 이 시설이 국가인권위원회법상 조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각하됐다.
한편 천주교 인천교구는 결정문에서 “노인 환자 인권 보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시인했다. 인천교주는 “피해자의 주 보호자는 교구였기에 피해자의 전원에 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며 “법률적 가족의 동의나 본인의 동의를 서면으로 받지 않고 교구가 결정한 것에 있어 잘못된 점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인천교구는 “김 신부의 임종 과정에 있어 관행이라고 생각했던 잘못된 행위에 대해 반성한다”며 “교구 내 모든 사제들에게 연명치료 거부 사전의향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가족으로부터 보호자 위임을 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