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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성소수자 위한 정신건강 안전망이 시급하다

등록 2021-03-31 04:59수정 2021-03-31 07:24

[3·31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지금 필요한 정신보건 정책 제언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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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체는 ‘트랜스젠더 길벗체'로 성소수자 활동가 길버트 베이커를 기리며 만들어진 영문 서체 ‘길버트체’의 한글판 서체 가운데 하나다.
이 서체는 ‘트랜스젠더 길벗체'로 성소수자 활동가 길버트 베이커를 기리며 만들어진 영문 서체 ‘길버트체’의 한글판 서체 가운데 하나다.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3월31일은 트랜스젠더의 삶을 세상에 알리는 날이다. 이날 전세계에서 트랜스젠더 존재를 사회에 드러내고, 이들이 직면한 차별과 혐오를 없애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펼쳐진다. 미국 트랜스젠더 활동가 레이철 크랜들이 제안해 2009년부터 시작됐다.

트렌스젠더는 우리 곁에 있지만, 정부 정책에선 없는 존재다.

상시적 차별에 노출된 소수자들은 심리적 위기에 놓일 가능성이 더 커, 촘촘한 정신보건 안전망이 필요하지만 국민 정신보건 실태조사에서조차 트렌스젠더는 보이지 않는다.

최근 몇 개월 사이 김기홍, 변희수, 이은용 3명의 트랜스젠더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도 자살예방 정책 등 국가 정신보건 정책 체계에 성소수자 보호망이 부재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① 아파도 차별 두려워 병원 못 간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월 ‘트렌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가기관이 처음으로 실시한 트렌스젠더 관련 실태조사였다. 2019년 한 해 동안 성인 트랜스젠더 591명 중 337명(57.1%)은 우울증, 143명(24.4%)은 공황장애를 진단받거나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국민 평균 수치와 비교할 때 월등히 높은 수치다. 2016년 조사에서 성인의 우울증 평생 유병률은 5%, 공황장애 등을 포함한 불안장애 평생 유병률은 9.3%였다.

보고서는 “(트랜스젠더는) 정신건강 취약층으로서 인지될 필요가 있다”며 정책 욕구를 가진 인구 집단으로서 트랜스젠더를 가시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트랜스젠더의 정신건강에 대한 접근은 사회적 차별과 배제에서 오는 사회적 위화감을 완화하는 데 맞추어져야 한다”고 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건강 취약계층인 트랜스젠더는 의료기관 문을 두드리는 일이 쉽지 않다. 신분증이나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하는 상황에서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관련해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것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병원 등 의료기관 이용을 포기한 적 있다는 답변이 21.5%로 가장 많았다.

트랜스젠더인 임푸른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부위원장은 “자살상담센터에는 트랜스젠더들로부터 위기 구조 요청 상담 전화가 자주 온다고 한다.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성소수자 상황을 가시화하는 사회적 조사를 진행하고, 조사 결과를 토대로 자살률을 효과적으로 낮출 수 있는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성소수자의 상황을 가시화하는 사회적 조사를 진행하고, 조사 결과를 토대로 자살률을 효과적으로 낮출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 정신보건복지센터 등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② ‘국민’ 실태조사에 포함해야

연구자들은 보건복지부가 5년마다 하는 자살·정신건강 실태조사에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 항목을 추가해 성소수자를 정부의 정신보건 정책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그래야 성소수자 위기 현황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염민섭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관은 “필요성은 충분히 있다. 연구자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해당 부서에 절차를 살펴 실제 가능한지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정신보건 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조처에 대해서도 “정부에서 할 것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현황 파악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초 발표한 제2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2021~25)을 보면, 정부는 정신건강 고위험군에 장병, 청년, 산모 등을 언급하고 5년간 이들을 위한 정신보건 인프라를 촘촘히 할 계획을 세웠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언급은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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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의 의료접근성을 연구해온 이호림 고려대 역학연구실 레인보우커넥션프로젝트 연구원은 “이미 다수의 연구에서 성소수자의 정신건강 취약성이 일관되게 보고되고 있다. 정부가 성소수자 자살 예방 정책을 세울 근거들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차별받은 경험이 많은 성소수자는 병원에 갈 필요성이 있어도 병원 가기를 미루거나 회피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법과 제도,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 성소수자가 마음 편하게 병원이나 상담센터를 방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③ 우울증, 성 정체성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고 회복을 돕는 심리상담사로서 트랜스젠더 세 분의 죽음에 슬픔과 책임을 느낀다. 앞으로 심리상담사들은 성소수자 차별문제에 관심 갖고 변화 위해 계속 행동하겠다.”

지난달 한국상담심리학회와 한국상담학회 소속 상담사 600명이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상담사 모임’을 꾸렸다. 상담사들은 일선 현장에서 성소수자들의 심리적 고충을 가장 가까이에서 듣는 이들이다. 이들은 “상담실 안에서 심리적 변화만 도모하는 것의 한계를 절감한다”며 상시적 차별에 노출된 성소수자에게 심리상담 접근성을 높일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모임은 <한겨레>에 성소수자의 심리상담 접근성 강화를 위한 정책 제언을 보내왔다. △성소수자 친화적 의료기관 정보를 충분히 제공할 것 △성소수자의 심리적 위기에 개입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할 것 △모든 정신건강 분야 전문가들에게 인권·감수성 교육을 필수화할 것 등이다.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7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는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공동행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7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는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공동행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덕희 상담사는 “정서적으로 건강한 성소수자도 지속해서 경험하는 미묘하고 무의식적인 차별에 장기적으로 노출되면 우울감이나 자살사고를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성소수자가 꼭 성 정체성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성소수자에게 취업 기회를 제한해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다면 생계의 어려움로 인한 우울감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상담사들은 성소수자들에게 미국 등에서 하는 ‘사회정의 옹호 상담’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회로부터 받는 억압이 개인 잘못이 아닌 사회 구조적 차원의 문제라는 걸 이해하도록 돕는 한편, 이를 헤쳐나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준다.

이 상담을 거치며 억압에 어떻게 대처할지,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지 방법을 찾는다. 국내 엘지비티(LGBT)상담연구회가 미국 LGBT이슈상담학회의 자료를 번역해 2019년 공개한 ‘LGBQQIA(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퀴어, 퀘스처닝, 인터섹스, 협력자) 내담자들을 위한 상담역량’ 가이드라인을 보면, 성소수자의 상담에서 필요한 상담자의 역할로 “상담받는 이가 체제적 장벽을 맞닥뜨린 상황에서 이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역량 강화와 옹호 개입을 사용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심리상담사 등 정신보건 전문가를 양성할 때 성소수자에 대한 기본소양 교육, 성인지·인권 감수성 교육은 필수적이다. 정부는 정신보건 관련 기반시설로 정신건강위기 상담전화(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1393) 등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에 근무하는 상담자가 성소수자에게 친화적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덕희 상담사는 “현재 우리나라는 상담 교육과정에 ‘사회정의 옹호 상담’ 관련 교과목은 거의 없다. 기본 자료와 전문 연구 서적도 부족하다”고 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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