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병원에 30여명이 번호표를 받고 긴 줄을 서 있었다. 모두 ‘가다실9’ 접종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가다실9는 자궁경부암 등을 유발하는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가운데 하나다. 함께 백신을 맞기 위해 기다리는 연인이나 혼자 온 남성들도 눈에 띄었다.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곳에서 백신을 맞기 위해 ‘원정 접종’을 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날 백신 1차 접종을 하러 온 대학생 김아무개(21)씨는 “집에서 가까운 병원과 (3회 접종 기준)15만원 가량 차이가 나 대중교통으로 40분 거리지만 이 곳으로 왔다”고 말했다.
가다실9 가격이 4월부터 15% 인상됨에 따라 벌어진 풍경이다. 가격 인상 전 백신을 맞으려는 사람들이 병원을 찾으며, 일부 병원에선 물량이 품절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31일 가다실9를 취급하는 병원들 여러 곳에 문의해보니, “가격 인상을 앞두고 가다실9 접종 예약이 몰려 물량이 품절됐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국립중앙의료원 쪽은 “30일부터 물량이 모두 품절돼 4월 중순 이후에나 재입고될 것 같다”고 말했고, 서울대병원 쪽도 “29일부터 물량이 품절돼 예약을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국내 가다실9 가격은 약 11~31만원이다. 총 3회를 맞아야 접종이 완료되기 때문에 현재도 평균 60만원가량을 들여야 접종할 수 있다. 한국엠에스디(MSD)가 4월1일부로 공급가격을 15% 인상하면서, 4월부터는 지금보다 약 5~14만원 비싸진다. 정부가 2016년부터 만 12세 여성 청소년을 대상으로 예방접종을 2회 지원하고 있지만, 이미 성인이 돼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여성이나 남성은 자비(비급여)로 백신을 맞아야 한다.
사람유두종바이러스는 성 접촉을 통해 감염돼는 경우가 많아 의료계는 최근 남성들에게도 백신 접종을 권하고 있고, 실제로 이를 접종하는 남성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남성 청소년에게도 무료접종을 확대하고, 백신 접종에 건강보험 적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0일 1차 접종을 한 한정연(25)씨는 “여자친구가 남성도 맞아야 한다고 권유해 가격 인상 전 여자친구와 함께 접종했다”며 “부담되는 가격인 만큼 무료접종 확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30일 1차 접종을 한 장아무개(30)씨는 “5월 결혼 준비를 앞두고 남자친구와 함께 접종했다”며 “남성도 청소년 때 무료접종을 할 수 있도록 정책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자궁경부암 주사 가다실9의 금액 인상 반대와 보험료 적용을 요청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와 이날 기준 약 6500명의 동의를 얻었다.
조병구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공보위원은 “최근 남성도 사람유두종바이러스 백신을 접종하려는 경우가 꽤 있고, 비뇨기과에서도 수요가 늘고 있다”며 “남성 청소년의 사람유두종바이러스 백신 접종 효과가 여러 연구 결과로 증명된 만큼 무료접종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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