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 2021학년도 총학생회장 후보로 나선 이훈(24)씨. 성공회대학교 미디어센터 제공
“전 성소수자 게이입니다.”
31일 저녁 7시, 서울시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한 강의실에서 이훈(24)씨가 본인의 성적지향을 ‘커밍아웃’했다. 사회융합자율학부 19학번인 이씨는 이어 “학내 모든 구성원에게 연대와 지지를 요청한다. 안전한 학교를 만드는 일에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뒤이어 ‘성공회대학교 제36대 총학생회 보궐선거 선거운동본부 ‘오늘’의 정책토론회가 이어졌다. 다음달 5일부터 사흘 동안 이어지는 총학생회장 선거에 단독으로 출마한 이씨가 당선되면 성소수자임을 밝히고 선출된 한국 대학 사회 내 일곱번째 총학생회장이 된다. 성공회대에서는 2017년 백승목씨가 성소수자임을 밝히고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바 있다.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이기도 한 이날, 이씨가 커밍아웃을 하며 총학생회장 후보로 출마한 이유가 무엇인지 들어봤다.
이씨에게 차별은 ‘공기’ 같았다. 그는 “성공회대는 성소수자를 고려해 ‘남자친구’나 ‘여자친구’ 대신 ‘애인’이란 단어를 쓰는 곳이지만 그럼에도 성소수자에겐 두가지 선택지밖에 없다”고 말했다. “두려움을 뚫고 커밍아웃을 하거나, 성소수자가 아닌 척 거짓말하거나.” 커밍아웃하지 않고 당연히 ‘비성소수자’로 여겨진 이씨는 “하루에도 수십번은 겪어서 익숙해진 두려움과 자기부정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그는 커밍아웃이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을 넘어 다른 성소수자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일이라고도 했다. 지난달 트랜스젠더 활동가 김기홍(38)씨가, 이달 3일 트랜스젠더 변희수 전 육군 하사가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이씨는 “계속된 비극에 몸까지 아플 정도로 절망했다. 아픈 시간을 견디고 있을 성소수자가 많을 것이다”라며 “(커밍아웃을 통해) 일련의 비극에 대한 희소식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성소수자의 ‘자기부정’을 대학 안에서라도 해소하고 싶다는 생각은 ‘모두의 화장실 설치 티에프(TF)’ 공약으로 연결됐다.
이씨는 “2017년 커밍아웃 뒤 당선된 총학생회장의 공약인 ‘성중립화장실’이 좌초됐다. 혐오세력에게 ‘너희가 맞았다’는 잘못된 의미가 전달됐다고 본다”며 “‘모두의 화장실’을 통해 성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에게 ‘혐오가 아닌 환대의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씨가 생각하는 ‘모두의 화장실’은 장애인의 용이한 접근을 위해 계단이나 턱이 없어야 하며 휠체어를 돌리기 편하게 내부 공간도 넓어야 한다. 성소수자도 화장실 이용에 눈치 볼 필요가 없게 칸마다 세면대와 변기, 거울이 설치되고 기저귀 교환대도 놓이게 된다. 이씨는 총학생회장에 당선되면 모두의 화장실을 학내 공론화를 통해 설치하려 한다.
모두의 화장실을 포함해 이씨는 인권과 학생복지를 두 축으로 삼아 공약을 만들었다. 핵심공약으로 꼽는 것은 학교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총학생회 내 ‘교육권리보장국 신설’이다. 학생과 직원, 하청 노동자의 참여가 불가능한 총장 선출 과정에 학내 모든 구성원의 참여를 촉구하는 ‘총장직선제’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당선된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이씨는 ‘커밍아웃입장문’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다. “수많은 비극들 앞에서 아파하고 있을 모든 트랜스젠더 그리고 성소수자에게 공감과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이번 커밍아웃을 통해)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의 연대가 이리도 강함을 증명하는 긍정적인 본보기가 되고 싶습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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