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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국서 태어났다면, 변희수 죽음 내 얘기였을 수도…”

등록 2021-03-31 21:06수정 2021-04-01 10:30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미군 네이트 황, 나탈리 로즈, 브리 프람 인터뷰
“트랜스젠더도 평범한 군인”
변희수 하사의 빈소 모습. 변 하사의 아버지는 영정사진으로 <한겨레> 강재훈 선임기자가 지난해 인터뷰 때 찍은 사진을 골랐다. 임태훈 제공
변희수 하사의 빈소 모습. 변 하사의 아버지는 영정사진으로 <한겨레> 강재훈 선임기자가 지난해 인터뷰 때 찍은 사진을 골랐다. 임태훈 제공

“제가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면 변희수 하사 죽음은 제 얘기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을 바꾼 뒤 미군 치의관으로 복무하는 한국계 미국인 네이트 황(31) 대위는 국제적 기념일인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하루 앞둔 30일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변 하사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는 “성별재지정 수술 뒤 여군으로 복무할 생각에 행복했을 변 하사를 생각하면 슬픔이 복받쳐오른다”며 “한국 정부는 그에게 군복무를 허락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네이트 황 대위. 본인 제공
네이트 황 대위. 본인 제공
황 대위는 미국에서 군 의료장학금을 받고 치과대에서 공부하며 군인을 꿈꿨다. 그러나 2학년 때인 2015년 성별재지정 수술을 받으며 꿈을 포기할 뻔했다. 어려서부터 젠더디스포리아(성별 불일치)로 성정체성을 고민했는데, 입대를 거부당하고 장학금을 반환해야 한다는 공포에도 불구하고 더는 젠더디스포리아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 했다. 다행히 2016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트랜스젠더의 군복무를 허용하면서 2017년 여름 입대했다.

2018년 6월 경기 평택의 주한미군 기지 캠프 험프리스로 파견된 황 대위는 부모의 고국에서 안락함을 느끼면서도 ‘오래 머물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성소수자에게 포용적이지 않은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는 변 하사가 성별재지정 수술을 받고 강제전역 당하는 과정을 안타깝게 지켜보다 지난해 6월 미국으로 복귀했다.

트랜스젠더 미군들의 삶도 평탄치만은 않았다. 황 대위가 입대하고 얼마 안 된 2017년 7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트위터로 “군사 전문가들한테 트랜스젠더 군복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조언을 받았다”며 “트랜스젠더가 초래할 의학적 비용과 혼란을 떠안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듬해 3월 행정각서로 트랜스젠더는 군복무 자격이 없다고 못박았다. 황 대위는 “쫓겨나면 장학금을 반환하고 빚더미에 앉을지 몰라 전전긍긍했다”며 “다행히 기존에 입대한 트랜스젠더는 문제 삼지 않았으나, 신규 입대는 차단하면서 큰 혼란이 빚어졌다”고 기억했다.

내털리 로즈 대위. 본인 제공
내털리 로즈 대위. 본인 제공
텍사스주에서 백신 수송 업무를 하는 내털리 로즈(32) 대위(남성→여성)도 “트럼프의 트위트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트럼프는 단지 자신을 지지하는 보수층 결집을 위해 그런 시도를 했다”고 <한겨레>에 말했다.

이들은 정치인들의 발언이나 관련 제도가 바뀔 때마다 자신들이 ‘지워질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포에 휩싸였다고 했다. 자연스레 변 하사의 입장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로즈 대위는 “변 하사를 만난 적은 없지만 미국에서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입대를 거부당하거나 전역한 사람들을 만났고, 변 하사처럼 목숨을 끊은 사람도 알기에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랜스젠더 미군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으로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1월25일 “미국은 포용력이 있을 때 국내와 전세계에서 더 강력하다. 자격을 갖춘 모든 미국인이 군복을 입고 나라에 봉사하도록 하는 게 군대와 나라를 위해 좋다”며 트랜스젠더의 군복무를 다시 허용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러나 두 대위는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황 대위는 “내가 트랜스젠더인지 모르는 동료들이 내 앞에서 성소수자 차별 발언을 해 종종 당혹스럽다”며 “성별재지정 수술 후에도 호르몬 치료와 지속적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군의관에 따라 성소수자 진료에 대한 지식과 감수성의 편차가 크다”고 말했다.

브리 프램 중령. 본인 제공
브리 프램 중령. 본인 제공
미국에는 트랜스젠더 군인을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 ‘스파르타’(SPART*A)가 있다. 브리 프램(41) 스파르타 부의장(공군 중령)은 <한겨레>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스파르타는 트랜스젠더 군인과 그 가족의 권리를 보호하는 단체로 보건의료 문제를 포함한 상담 서비스도 제공한다”며 “성소수자 군인이 겪는 차별과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램 중령은 2003년 입대 뒤 젠더디스포리아 판정을 받고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꿨다. 그는 성별재지정 수술 사실을 오랫동안 동료들에게 알리지 못했다고 했다. 2016년 오바마 행정부가 트랜스젠더 군복무를 합법화하자 용기를 냈다. “한참 고민하다 동료들에게 수술 사실을 설명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놀랍게도 모두가 내 사무실로 와 손을 맞잡고 존경을 표했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난 성소수자 지휘관으로서 부대원들의 힘든 일에 더 깊이 공감하고 차별과 폭력이 없는 부대를 만들 수 있었다”며 “트랜스젠더도 ‘보통사람’으로 차별받지 않고 복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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