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검찰. <한겨레> 자료사진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출국금지 의혹 사건을 수사한 뒤 송치하라’는 공수처의 요청을 검찰이 거부하고 사건에 연루된 검사 등을 직접 기소하면서다. 이 사건을 공수처가 직접 수사할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핵심 피의자로 손꼽히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공수처의 이른바 ‘특혜 면담조사’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강제수사에 나설 수도 있어, 두 기관의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2일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에 연루된 이규원 전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검사 등이 재판에 넘겨진 것을 “(관련) 기사를 보고 알았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수사해온 수원지검 수사팀(팀장 이정섭 형사3부장)은 지난 1일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과 이규원 검사를 전격 불구속 기소했다. 차 본부장에게는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직권남용,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가, 이 검사에겐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직권남용, 자격모용공문서작성 및 행사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의 기소는 전격적이었다. 앞서 공수처는 검찰이 이첩한 이 사건을 수사팀 구성 미비 등을 이유로 지난달 12일 검찰로 재이첩하며 “공소제기 판단을 위해 수사를 마친 뒤 사건을 공수처로 송치하라”고 통보했고, 검찰·경찰과 3자 협의체를 꾸려 이첩, 기소 등에 관한 사항을 논의 중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두 사람을 기소하면서 이런 요구와 논의를 거부한 것이다. 법조계에선 공수처가 인적 구성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하기 전에 검찰이 한발 먼저 공소제기를 한 것이란 풀이가 나온다.
한편에서는 공수처가 ‘반격 카드’로 이 사건을 직접 수사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수원지검이 차 본부장과 이 검사를 기소했어도 이성윤 지검장에 대해선 결론을 내지 못했고, 당시 보고 체계에 있던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대해서도 검찰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달 29일 공수처에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의뢰한 점도 이런 관측에 무게를 싣는다.
다만, 이성윤 지검장의 면담조사를 두고 불거지고 있는 ‘특혜 의혹’은 공수처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언론을 통해 이 지검장이 공수처의 관용차를 타고 면담조사에 다녀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특혜 의혹이 더욱 짙어지는 모습이다. 공수처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수처는 이 지검장의 특혜 조사 의혹과 관련한 고발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당시 이 지검장의 공수처 출입 관련 자료와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 등을 수원지검에 전달했다. 특히, 보수단체가 김진욱 처장을 대검찰청에 고발한 데다 검찰이 이 지검장 조사와 관련해 공수처에 요청한 자료를 제공받지 못할 경우, 검찰이 시시티브이 영상 보관 기간 등을 고려해 공수처 강제수사에 나설 수도 있어, 두 기관의 갈등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한편, 공수처는 관용차 지원 논란에 대해 “보안상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며 “앞으로는 공정성 논란이 제기되지 않게 유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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