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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우리동네 50살 나무 100그루 숲, 일주일새 싹 사라졌습니다

등록 2021-04-04 15:52수정 2021-04-04 18:20

생태복원 이유로 무더기 베어내는 지자체들, 주민들과 마찰
“한번에 싹 베면 야생식물·조류 생태교란…점진적 복원 필요”
지난달 22∼29일 서울 마포구청은 성미산의 40∼50년 된 아카시아 100여 그루를 무더기로 베어냈다. 성미산은 천연기념물 솔부엉이 등 40여종의 새들이 깃든 곳이다.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 제공
지난달 22∼29일 서울 마포구청은 성미산의 40∼50년 된 아카시아 100여 그루를 무더기로 베어냈다. 성미산은 천연기념물 솔부엉이 등 40여종의 새들이 깃든 곳이다.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 제공
식목일을 앞두고 일부 지자체들이 생태복원을 이유로 수십 년 된 큰 나무들을 무더기로 베어내 주민들과 마찰이 일고 있다. 서울 마포구청은 ‘성미산 재정비 사업’을 진행하면서 지난달 22일 삽차(포클레인)을 동원해 40∼50년 된 아카시아 100여 그루를 뿌리째 뽑아냈다. 낡아서 안전 우려가 있는 산책로와 에어로빅장을 정비하고, 외래종인 아카시아를 토종인 참나무로 바꾼다는 것이 이 사업의 취지다.

천연기념물 솔부엉이 날아드는 성미산에 포클레인이

하지만 뒷산에 삽차가 들어와 땅을 뒤집는 모습을 보고 놀란 주민들은 “성미산 숲을 망치고 있다”고 반발했다. 이들은 지난달 25일과 이달 1일 마포구청 담당자들을 만나 항의했다. 이달 15일에는 담당자와 다시 만나 성미산 재정비 관련 ‘주민·구청 협의체’ 구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성미산 아래 사는 박종혁 ‘산다움’(성미산 자연환경보호단체) 부회장은 “구청에서 고목들을 잘라낸 자리에 토종 묘목들을 심겠다고 하는데, 지금과 같은 숲이 되려면 20∼30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며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진행한 데 대해 주민들이 몹시 화가 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성미산에는 너구리 같은 네발짐승은 물론 솔부엉이 같은 천연기념물, 멸종위기인 새홀리기, 파랑새 등 관찰된 새만 40여종에 달한다. 이렇게 나무를 베면 생태교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관련기사 : “성미산에 옹달샘 만드니 새들 날아와 생태학습장 됐네요”)

이민형 채비움 서당 훈장이 서울 마포구 성미산 자락에서 찍은 천연기념물 솔부엉이. <한겨레> 자료사진
이민형 채비움 서당 훈장이 서울 마포구 성미산 자락에서 찍은 천연기념물 솔부엉이. <한겨레> 자료사진
마포구청 관계자는 “아카시아는 40∼50년 전에 속성수(빨리 자라는 나무)·비료목(땅의 힘을 키워주는 나무)으로 많이 심었는데, 이제 수명을 다해 동공(나무 가운데 빈 공간)이 생기는 등 쓰러질 우려가 있고 관련 민원도 계속 나와 제거하게 됐다”면서도 “한꺼번에 많은 나무를 베어 주민들이 놀란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 나무 베기는 더 진행하지 않을 것이고, 아카시아를 파낸 곳은 다음 주부터 토종나무들로 빨리 복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도봉구 해등로 ‘녹지 연결로 조성사업’ 현장의 모습. 주민들이 드론으로 촬영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갈무리 했다.
서울 도봉구 해등로 ‘녹지 연결로 조성사업’ 현장의 모습. 주민들이 드론으로 촬영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갈무리 했다.
“생태길 만든다고 우거진 숲을 파헤쳐도 되는 건가요?”

도봉구는 ‘녹지 연결로 조성사업’을 벌이면서, 지난 2월27일부터 쌍문1동과 방학3동 사이 해등로 양옆의 상수리나무, 참나무 등 큰 나무 65그루를 벴다. 끊긴 북한산 자락을 잇는 ‘생태복원’을 하겠다는 것이 사업 취지다. 현재는 주민 반발로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주민들은 대책위원회를 세워 지난달 5일부터 공사현장에 서명작업을 벌여 현재까지 2500여명의 동참을 받아냈다. 또 지난달 19일 구청장 면담에서 “일방적으로 공사를 강행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주민대책위 강주혜씨는 “수년 전에 쌍문1동 뒷산 정비 때도 ‘생태 다양화’를 이유로 우거진 숲을 파헤치고 묘목을 심었는데, 나무들이 자리 잡지 못했다”며 “2019년 말에 열 명도 안 되는 주민들이 참석한 주민설명회를 해 놓고 1년여 만에 갑작스레 공사를 벌이는 등 주민 설명도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도봉구청 관계자는 “북한산 능선을 따라 생태길을 이으려면 도로 위로 다리를 지어야 하는데, 그때 필요한 최소한에서 나무를 벤 것”이라며 “전문가 용역에서 사업 타당성이 입증됐다. 공사 재개 전에 주민들과의 충분한 협의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예산·기간 맞추기 보다 생태 환경 먼저 고려해야”

최진우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 대표는 “이렇게 큰 나무를 싹 베어버리면 야생식물 유입 등 생태교란이 일어나는 등 부작용도 크다”며 “꼭 필요한 사업만 하고, 불가피하게 큰 나무를 벨 땐 무성한 숲이 보전되도록 시간을 충분히 두고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 정해진 예산·사업 기간에 맞추기보다 생태 환경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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