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요양보호사가 청소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성기를 내놓고 있거나 팬티만 입고 있는 경우가 있어요. 혼자 들어가면 위축되죠.”(가스안전점검원 ㄱ씨)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맞는 경우가 있어요. 술에 취해 죽여버린다는 식의 폭언과 욕설을 하는데, 대응할 방법도 마땅치 않아요.”(통신설치기사 ㄴ씨)
가스안전점검원·요양보호사 등 가구방문 노동자 5명 중 1명이 고객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고, 4명 중 1명은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8일 지난해 4~10월 가구방문 노동자 79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가구방문 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설문조사·심층 면접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 직종은 통신설치·수리기사, 가스안전점검원, 상수도 계량기검침원, 재가요양보호사, 방문간호사, 다문화가족 방문교육지도사, 통합사례관리사 등이다.
조사 결과 고객으로부터 부당대우를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74.2%로 집계됐다. 유형별로는 괴롭힘 목적의 늦은 전화(48.8%)가 가장 많았고, 밤늦은 시간에 업무 수행 요구(47.2%), 사업주 또는 직장에 부당한 민원 제기(43.4%) 등의 순이었다.
응답자의 25.9%는 신체적 폭력을, 22.1%는 성희롱·성추행을 겪었다고 답했다. 무기를 이용한 위협(7%)이나 성폭행(2%)을 당했다는 응답자도 있었다. 한 통신설치기사는 “망치를 들고 살짝 내리치면서 자신이 이전에 설치기사와 싸운 적이 있다고 말을 하는 일이 있었다. 갑자기 저 망치로 사람을 내리칠지 알 수 없으니 계속 뒤를 의식하며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 밖에 육아·가사를 요구하거나(17.8%) 생활용품을 사비로 지출하라는 요구(14.5%)도 있었다. 모두 가구 방문 노동자 본연의 일을 넘어서는 요구다. 한 요양보호사는 “돈 2000원을 주면서 참기름 사 와라, 콩나물 사 오라 요구하고 사가면 ‘왜 이런 걸 사 왔냐’며 소리를 질렀다”고 말했다. 다른 요양보호사도 “(돌봄 대상자가) 방 4개, 주방, 거실, 베란다, 창틀까지 닦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회사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의 65.1%는 회사로부터도 부당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유형별로는 고객의 명백한 잘못 전가(43.8%), 기상악화에도 업무 수행 요구(43.3%), 위험한 장소에서 업무 수행 요구(39.1%), 부당 민원에 불이익 처우(36.6%) 등의 순이었다.
“저는 성희롱이 이렇게 힘든 건 줄 몰랐어요. 센터에 말하기도 싫어요. 팀장에게 대상자가 팬티도 안 입고 몸에 딱 붙는 옷을 입어 불편하다, 야한 드라마를 본다고 말해도 ‘왜 거기 있어요, 눈을 돌리면 되지’라고 했어요.”(요양보호사 ㄷ씨)
지난 1년간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다친 적이 있는 사람들은 48%로,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방문 노동자들이 최근 1년간 업무상 산업재해에 노출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상 재해가 발생했을 때 스스로 치료비용을 부담한다는 노동자는 61%에 이르렀다.
“철판이 발에 떨어지는 바람에 발가락이 부러진 적이 있어요. 그래도 산재를 신청할 수가 없었죠. 3년 지나면 다시 계약하니까 탈락할까 봐 신청을 안 했어요. 저도 다치고 나서 한번 잘렸다가 다시 계약했어요.(상수도 계량기검침원 ㄹ씨)
이들의 노동 환경은 코로나19로 더 취약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22.1%는 코로나19로 수입 감소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91%는 ‘코로나19 감염위험을 느낀다'고 했고, ‘대리점 등 회사 측이 방역수칙을 제대로 점검하고 있다’는 응답은 38%에 그쳤다.
응답자의 22.4%는 상담이나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41%는 ‘극단적 선택을 생각해본 적 있다’고 답했고, 최근 1년간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는 응답은 20.3%였다.
인권위는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오는 9일 ‘가구방문 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정책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인권위는 “향후 가구방문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조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관련 법·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