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소송 선고공판이 열린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2차 소송에서 석달여 전과 달리 패소한 것은 국제법상 ‘국가면제’와 박근혜 정부 때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갈렸기 때문이다. 1차 소송은 일본의 무대응으로 승소 판결이 확정됐지만, 2차 소송은 피해 할머니들이 즉각 항소할 뜻을 밝히면서 상급심 판단을 다시 받아봐야 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재판장 민성철)는 21일 이용수·고 곽예남 할머니 등 피해자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각하 결정을 내렸다. 지난 1월 피해자 12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배 소송에서 “1인당 1억원씩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한 같은 법원 민사합의34부(재판장 김정곤)의 판단과 다른 결론을 내린 것이다.
1·2차 소송의 결론을 가른 분수령은 ‘국가면제’에 관한 판단이다. 국가면제는 일본 정부 쪽이 주장해 온 내용으로 국내 법원이 국외 국가에 대한 소송의 재판권을 갖지 않는다는 국제관습법이다. 1차 소송 재판부는 “국가면제 이론은 절대규범(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해 타국의 개인에게 큰 손해를 입힌 국가가 국가면제 이론 뒤에 숨어 배상과 보상을 회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해 형성된 것은 아닐 것이므로, 이런 경우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 해석에 예외를 허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국가면제 이론은 항구적이고 고정적인 가치가 아니고 여러 나라의 국내법에서 예외사유를 정하는 등 국제법 체계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행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2차 소송 재판부는 이날 “현시점에서 유효한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과 이에 관한 대법원 판례 법리에 따르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주권적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불법으로 점령된 국가의 영토 안에서 불법행위가 이뤄졌을 때 국가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조약에 비준하거나 개별 입법을 한 나라가 전체 유엔(UN) 회원국 가운데 약 19%에 불과해 기존 국제관습법이 바뀌었다고 볼 수 없다는 논리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도 갈렸다. 1차 소송 재판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피해자의 배상을 포괄하지 못했다고 봤다. 앞서 위안부 피해자들은 1991년 일본 법원에 여러 차례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나 모두 기각되거나 각하됐고, 2000년 미국 등 국외 법원에 제시한 소송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1차 소송 재판부는 “일본 정부가 국제공동체의 보편적인 가치를 파괴하고 반인권적 행위로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가했을 경우까지도 최종적 수단으로 선택된 민사소송에서 재판권이 면제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부당한 결과가 도출된다”며 “한·일 청구권 협정과 한·일 합의는 피해를 입은 개인에 대한 배상을 포괄하지 못했고, 협상력이나 정치적 권력을 갖지 못한 피해자 개인들에게 소송 외엔 구체적인 손해를 배상받을 방법이 요원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2차 소송 재판부는 “일본 정부에 국가면제가 인정된 결과 피해자들이 한국 법원에 제소해 권리구제를 받는 것이 어렵다 하더라도 ‘외교적 보호권’ 행사로 볼 수 있는 2015년 한·일 합의에 의해 피해자들에 대한 ‘대체적인 권리구제수단’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며 달리 판단했다. 2015년 한·일 합의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위한 일본 정부 차원의 조치인 만큼 피해자들에 대한 대체적 권리구제 수단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또한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일본 정부의 책임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했고 최종 합의안에 관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 등 내용과 절차에 있어 일부 문제점이 있다”라면서도 “이 합의와 이에 따른 후속 조치에 의해 피해자들을 위한 대체적인 권리구제수단이 마련됐다는 것 자체는 부정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2차 소송 재판부는 이와 함께 법원 판결이 외교 정책과 국익에 잠재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현재 국제관습법과 달리 일본 정부의 국가면제를 부정하게 되면, 판결 선고 뒤 강제집행 과정에서 일본 정부와 외교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한 게 대표적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판결이) 한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 이뤄진 외교적 합의의 효력을 존중하고 추가적인 외교적 교섭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지, 일방적으로 피해자들에게 불의한 결과를 강요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한·일 합의에 의해 피해자들의 권리가 처분됐다거나 소멸했다고 보는 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조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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