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2005년 6월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열린 제16회 민족민주열사 범국민 추모제에서 아들의 영정을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전태일 열사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가 1980년 군사정권 시절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을 확정 판결받은 데 대해 검찰이 40여년 만에 직권으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기로 했다. 검찰은 2017년 8월부터 과거사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들의 피해 회복을 위해 재심청구를 진행해왔다.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부장 서인선)는 22일 “계엄포고 위반 등으로 처벌받은 민주화 운동가 고 이소선 여사 등 5명에게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였음을 인정해 검사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특별법)에서 정한 특별재심 조항에 근거해 재심을 청구했다. 특별법은 12·12 사태와 5·18 민주화운동을 전후해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 행위를 저지하거나 반대한 일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자는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은 유죄가 확정된 형사사건에서도 재심 사유가 발생하면 당사자, 유족뿐만 아니라 검사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이 여사는 1980년 5월4일 고려대학교 도서관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청계피복노조의 결성 경위,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 등을 주제로 연설했다. 또 같은 해 5월9일 서울 영등포구 노총 회관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금속노조원들과 함께 ‘노동3권을 보장하라, 민정을 이양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에 전두환 신군부는 허가 없이 불법집회를 진행했다며 이 여사를 계엄 포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민간인인 이 여사는 1980년 12월6일 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같은 해 12월12일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 여사는 2011년 9월3일 별세했다. 검찰은 “1979년 12·12 군사반란 뒤 신군부가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저지른 일련의 행위는 헌정 질서파괴 범죄에 해당한다. 이 여사의 행위는 헌정 질서파괴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는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고 재심 청구 이유를 설명했다.
북부지검은 올해 2월 대검 공공수사부로부터 이 여사 사건과 관련한 자료를 넘겨받고 재심 청구의 필요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대검은 2017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 취임 뒤 1980년 5월18일을 전후해 신군부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처벌받은 사람 등 수백명을 대상으로 재심 청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사건 당사자가 직접 재심을 청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다.
북부지검은 당초 사건 당사자인 ‘이소선’ 이름만으로 이 여사를 특정하진 못했다. 이 여사의 전산 가족관계등록부에는 아들 전태일 열사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직접 도봉2동 주민센터로 찾아가 이 여사의 종이로 된 가족관계등록부을 열람해 전태일 열사의 이름이 한자로 적혀있는 것을 확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전태일 열사가 70년대에 사망해 전산화기 미처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이 여사의 아들이자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태삼씨는 검찰의 재심 청구에 “다시 되돌아보기 싫은 지나간 날들이었고 40년이 지난 사건이지만 이제라도 재심을 받을 수 있게 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밖에 검찰은 1980년 5월1일 반정부 시위에 참여해 포고령위반 선고유예를 받은 조아무개씨, 숙명여대 재학 시절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출판해 1981년 1월24일 군법회의에서 선고유예를 받은 고 김아무개씨 등 4명에 대해서도 재심을 청구했다.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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