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원님’부터 찾고 보자”
민사소송 효율화가 대안
민사소송 효율화가 대안
신용카드회사들이 연체자들을 무더기 형사고소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채무자 대부분이 카드사가 민사소송에서 이겨도 ‘강제집행’할 재산이 없다는 것도 이유지만, “전과자가 된다”는 두려움이 채권추심의 효과적인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중앙지검은 카드연체자가 사기죄로 형사고소되면 카드 빚 외에 다른 채무를 지고있지 않은 ‘단순연체자’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각하’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빚이 많이 있는데도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쓴 연체자에 대해서는 속일 목적, 곧 ‘애초 갚을 뜻이 부족했다’고 판단해 기소한다. 황희철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이처럼 서울중앙지검에는 어느 정도 기준이 합의돼 있기 때문에 기소율이 20~30%로 일정한 것”이라며 “3∼4년 전 신용카드회사의 무더기 고소가 한창 많았을 때 카드회사 법무팀 담당자를 불러 ‘왜 민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을 검찰에 갖고 오느냐’고 항의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부분별한 카드 발급 뒤 고소는 불합리”
“카드회사 무고죄 혐의로 수사할 수도” 그러나 신용카드회사의 고소사건과 같은 ‘민사사건의 형사고소’에 대해서는 전국 검찰에 공통된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신용카드 연체는 대검찰청의 ‘여신전문 금융업법 양형기준표’에 포함된 범죄도 아닐 뿐더러 사건마다 ‘애초에 카드 빚을 갚지 않을 의도가 있었는지’를 판단해 ‘사기죄’가 성립하는지를 일일이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은 각 지방검찰청이 무더기 고소가 있을 때마다 기소 여부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는 실정이다. 석동현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1997년 외환위기 직전 정부가 카드회사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을 때 신용카드회사가 신용조회도 하지 않고 길거리에서 함부로 카드를 발급하고 심지어 고등학생한테 발급한 경우도 있었다”며 “이제 와서 검찰에 ‘카드 사용자가 애초에 갚을 뜻이 없었다’고 수사의뢰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김남근 위원은 “신용불량자가 400만명에 이른 데는 카드회사의 무분별한 발급과 김대중 정부가 이를 묵인·방치한 책임도 크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카드회사의 무더기 고소는 ‘민사적 사건을 해결할 때 국가권력의 개입은 최후에 이뤄져야 한다’는 형법의 ‘보충성의 원칙’에 반한다”며 “수백만명의 신용불량자를 범죄자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다시 경제활동인구로 일으켜 세울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두식 한동대 법대 교수는 “국민이 민사사건을 수사기관으로 가져가게 된 것은 옛날 원님이 한 마을의 행정권·민사재판권·형사재판권·형벌권을 모두 가졌던 제도 탓”이라며 “사소한 시비가 생겼을 때 경찰을 부르는 것이 습관이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애초에 속일 목적이 없음이 명백한 연체자를 고소했을 경우 역으로 고소한 카드회사를 무고죄 혐의로 수사할 수도 있다”며 “강제집행 비용을 낮춰 민사소송을 ‘저비용 고효율’로 개선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말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카드회사 무고죄 혐의로 수사할 수도” 그러나 신용카드회사의 고소사건과 같은 ‘민사사건의 형사고소’에 대해서는 전국 검찰에 공통된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신용카드 연체는 대검찰청의 ‘여신전문 금융업법 양형기준표’에 포함된 범죄도 아닐 뿐더러 사건마다 ‘애초에 카드 빚을 갚지 않을 의도가 있었는지’를 판단해 ‘사기죄’가 성립하는지를 일일이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은 각 지방검찰청이 무더기 고소가 있을 때마다 기소 여부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는 실정이다. 석동현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1997년 외환위기 직전 정부가 카드회사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을 때 신용카드회사가 신용조회도 하지 않고 길거리에서 함부로 카드를 발급하고 심지어 고등학생한테 발급한 경우도 있었다”며 “이제 와서 검찰에 ‘카드 사용자가 애초에 갚을 뜻이 없었다’고 수사의뢰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김남근 위원은 “신용불량자가 400만명에 이른 데는 카드회사의 무분별한 발급과 김대중 정부가 이를 묵인·방치한 책임도 크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카드회사의 무더기 고소는 ‘민사적 사건을 해결할 때 국가권력의 개입은 최후에 이뤄져야 한다’는 형법의 ‘보충성의 원칙’에 반한다”며 “수백만명의 신용불량자를 범죄자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다시 경제활동인구로 일으켜 세울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두식 한동대 법대 교수는 “국민이 민사사건을 수사기관으로 가져가게 된 것은 옛날 원님이 한 마을의 행정권·민사재판권·형사재판권·형벌권을 모두 가졌던 제도 탓”이라며 “사소한 시비가 생겼을 때 경찰을 부르는 것이 습관이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애초에 속일 목적이 없음이 명백한 연체자를 고소했을 경우 역으로 고소한 카드회사를 무고죄 혐의로 수사할 수도 있다”며 “강제집행 비용을 낮춰 민사소송을 ‘저비용 고효율’로 개선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말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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