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재난·산재 참사 유가족·피해자들의 기록과 증언회’에서 참석자들이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을 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김일두씨는 경화건설 공사팀장으로 일하며 격무와 과로에 시달리다 2018년 2월 숨졌다. 극단적 선택에 따른 결과였다. 근로복지공단은 김씨의 죽음이 열악한 노동환경과 과중한 업무에 따른 것으로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다며 유족급여를 지급하기로 했다. 사망과 업무 연관성을 입증하기 쉽지 않아 ‘과로 자살’을 인정받는 데 어려움이 많지만, 공단이 이를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회사가 제동을 걸었다. 2019년 3월 김씨에 대한 유족급여 지급을 결정한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사망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김씨의 아내 박아무개(54)씨는 “남편이 20년을 근무한 회사에서 이렇게 대응하니 마음이 더욱 아팠다. 근로복지공단이 패소하면 그동안 받았던 유족급여를 토해내야 하는 건 가족인데 공단은 소송을 당했다는 소식도 알려주지 않았고, 뒤늦게 알게 됐다. 공단마저 우리 편이 아닌 것 같았다”며 고개를 떨궜다. 남편을 잃은 슬픔에 더해 3년째 계속되는 회사 쪽의 소송에 박씨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산업재해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진상규명과 보상 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기업 등 책임자 쪽의 ‘역고소’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유족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을 해소할 새 없이 소송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너무 힘들다”고 토로한다.
박씨는 지난해 2월 ‘공단의 유족급여 지급이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로 한숨 돌릴 수 있었지만, 소송은 끝나지 않았다. 회사가 유족급여 취소 소송과 함께, 퇴직금을 줄 수 없다는 채무부존재 소송도 함께 냈기 때문이다. 앞서 고용노동부가 박씨의 퇴직금 등을 유족에게 지급하라고 권고하자 회사는 유족을 상대로 채무부존재 소송을 낸 것이다. “근로계약 당시 매월 임금에 퇴직금 몫을 포함해 지불했다”는 게 회사 주장이다. 박씨는 “회사야 소송을 비용으로 처리하면 되지만, 개인은 그렇지 않다. (남편을 잃은) 정신적 충격으로 아직 아이와 병원 치료도 받고 있고, 아이를 둔 채 일을 하기가 쉽지도 않은데 변호사 비용까지 부담이 된다”고 토로했다.
‘한국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 모임’의 강민정 연구원은 “회사가 공단을 상대로 거는 소송은 남은 직원들에게 남기는 경고성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산재가 인정됐다는 선례가 남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어떤 가족은 산재 승인이 돼도 ‘(공단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낼 수 있는)소 제기 기간인 90일은 조용히 살아야겠다’고까지 말한다”고 전했다.
정순규씨의 유가족들도 비슷한 처지다. 정씨는 2019년 10월 경동건설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하청업체 노동자다. 그의 친척 등 4명은 폭행·강요 등으로 고소를 당해 현재 수사를 받고 있다. 같은 해 11월 정씨의 장례식장을 찾은 하청업체 대표 ㄱ씨와 직원이 유족들과 보상금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언쟁과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이게 문제가 됐다. ㄱ씨 쪽은 장례식장에서 친척들로부터 폭행·폭언을 당해 “강제로 보상금 지불 각서를 작성하게 된 것”이라고 각서 효력을 문제 삼으며 사건 당일 경찰서를 찾아 고발장을 제출했다.
그러나 정씨의 아들 정석채(36)씨는 “장례식까지도 (원청인) 경동건설 쪽에선 나타나지도 않고,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해 모두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하청업체 대표가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나오니 어머니도 충격에 쓰러지시기까지 했다. 그걸 본 친척과 친구들이 흥분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사건을 맡은 부산지검 동부지청은 지난해 7월 유족 등을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은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ㄱ씨 쪽에) 항의하는 것을 두고 위협한다거나 협박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며 “하청업체 쪽 직원도 정순규씨 사망에 책임이 있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점 등을 보면 당시 강제적으로 (보상) 각서를 작성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ㄱ씨 쪽은 검찰의 수사가 미진하다는 이유로 불복해 항고했고, 부산고검은 이를 받아들여 지난 1월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라는 재기수사명령을 내렸다. 정씨는 “재기수사명령 소식에 너무 화가 났다. 오히려 건설사 쪽이 가해자인데 항고까지 한 것을 보면서 이런 식으로 형사고소를 하는 게 매뉴얼처럼 돼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고 토로했다. 이와 별도로 정순규씨 사망에 대한 경동건설과 하청업체의 책임을 따지는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다.
기업이 고소를 한 경우는 아니지만, 산재 신청 과정에서 고소를 당해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2019년 4월 아파트형 공장 신축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추락사한 고 김태규(당시 24살)씨의 누나 김도현(31)씨는 근로복지공단 직원 ㄴ씨로부터 공갈·협박 혐의로 고소를 당해 지난 16일 경찰 조사를 받았다. 김씨와 유족들이 산재신청 관련 상담 중 ㄴ씨의 특정 발언이 문제가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고, 이에 공단이 경징계 처분을 하자 ㄴ씨가 김씨를 고소한 것이다. “수급권자를 누구로 할지를 두고 다른 의견을 내자 유족들이 원하는 대로 수급권을 갖기 위해 해당 발언을 문제 삼아 협박한 것”이라는 게 ㄴ씨의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산재 입증책임의 대부분을 피해자에게 떠맡기는 현행 방식에서는 유가족들이 역고소를 당할 위험에 상시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산재 사건은 대부분 보상이나 피해에 대한 입증책임을 개별 가족이 지는 경우가 많다. 가족을 잃고 이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격앙되기 쉬운데, 사용자 등과 부딪치다가 역고소를 당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한창수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노동안전부장은 “개인은 이런 소송을 감당하지 못한다. 만약 지기라도 하면 회사와 유족이 합의를 보는 과정에서 불리한 자료로 쓰일 위험도 있다. 건설사에 이런 식의 소송을 컨설팅하는 법무·노무법인도 있다고 한다. 건설업 산재 사건에선 특히 보호되지 않는 일용직 노동자가 많아 이런 식으로 소송을 걸어 재갈을 물리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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