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15일 대통령 재가를 거쳐 검사 13명을 임명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가 30일로 출범 100일을 맞았다. 검찰개혁과 고위공직자 부패척결을 위해 우여곡절 끝에 탄생하며 국민적 기대를 모았지만,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특혜 조사’ 의혹과 검사·수사관 정원미달, 검찰과의 갈등 등으로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상황이다. ‘1호 수사’를 계기로 수사력을 입증하고 중립성과 독립성을 회복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이날 직원들에게 출범 100일 기념 떡을 돌리고 단체 메일을 보내 격려했다. 그는 “시행착오도 있었고 다른 조직보다 배는 힘들었다”며 “공수처가 왜 탄생했는지 그 사명을 우리가 잊지 않는다면 조금 힘들어도 괴로워도 넉넉히 이기리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김 처장이 “힘들었다”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지난 100일 동안 검찰과의 갈등을 비롯해 공수처를 둘러싼 ‘논란’을 두고 법조계에선 그의 처신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표적인 게 이성윤 지검장 조사다. 지난 3월 공수처는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를 받는 이 지검장을 관용차로 청사에 출입시키고 면담 뒤, 조서도 남기지 않아 ‘황제 조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고위공직자를 수사하는 곳인 만큼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생명인데, 본격 수사에 나서기도 전에 공정성 시비를 자초한 것이다. 김남근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개혁입법특위 위원장·참여연대 정책위원)는 “조서를 정확히 작성해야 하는 건 수사의 기본”이라며 “고위공직자를 상대로 더욱 엄격한 잣대를 세워야 하는데, 일반적인 수사 원칙조차 안 지켰다”고 비판했다.
수사 능력을 둘러싼 우려도 공수처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검사 정원 23명 가운데 채용된 검사는 15명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검사 출신은 4명뿐이다. 책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과 제도의 이해>를 쓴 정웅석 형사소송법학회 회장은 “(지금 공수처의) 가장 큰 문제는 인력 미비”라며 “우수한 (수사) 인력들이 지원하지 않은 것은 공수처 출범 초기인 데다, 정권이 바뀔 경우 재임용 가능성에 회의를 갖는 시선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공수처 검사 임기는 기본 3년에 3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
반면, 지금의 인력으로도 충분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도 웬만한 특검 규모다. 검사 출신이 적다고 하지만 수사 경력이 쌓이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과의 ‘수사권’과 ‘관할권’도 정리돼야 할 과제다. 공수처법이 명확하지 않은 대목도 있고, 검·경과 연관된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탓도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은 이날 ‘형사소송법에 따라 공수처는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권한이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공수처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완수사 요구는 검찰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완수사 요구에 관한 근거 조항은 형사소송법 제197조 2의 1항이다. ‘검사는 사법경찰관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도 검사이지만, 이법 3항에는 ‘검찰총장 또는 각급 검찰청 검사장은 사법경찰관이 정당한 이유 없이 보완수사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권한 있는 사람에게 해당 사법경찰관의 직무배제 또는 징계를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대검은 이를 근거로 형사소송법 197조 2에서 말하는 ‘검사’란 검찰총장 또는 검사장에게 속한 검찰청 검사를 의미하며 공수처 검사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선 그의 비서 등 ‘고위공직자가 아닌 관계자’ 수사도 필수지만, 공수처는 이들을 수사할 권한이 현재로선 마땅치 않은 점도 문제로 꼽힌다. 정웅석 회장은 “대상을 고위공직자로만 못 박아둬 부패 수사에 필요한 ‘수행원’ 조사도 못 한다.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면 관할 문제가 다시 거론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이성윤 지검장 사건을 두고 최근 검찰과 갈등을 빚은 ‘유보부 이첩’ 문제도 관할권을 둘러싼 문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공수처법엔 다른 기관에 이첩한 사건의 기소권을 어느 기관이 갖는지 명시돼 있지 않다. 법 개정 없인 검찰 등 다른 수사기관과 관할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한편에서는 공수처장 후보 추천 과정에서 야당의 ‘거부권’(비토권)을 무력화한 공수처법 개정을 문제 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창현 교수는 “지금 구조에선 공수처장이 집권세력에 휘둘릴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수처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정치적 중립성을 회복하는 일이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남근 변호사는 “1996년 참여연대가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공수처 도입을 주장했던 것은 정치권력에 취약한 검찰이 고위공직자 비리와 부패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공수처는 설립 취지대로 정치권력과 무관하게 고위공직자 부패 및 비리 수사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집권세력이 지나치게 ‘검찰개혁’에 공수처를 이용한 측면이 있다”며 “검찰은 고위공직자 집단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창현 교수도 “그동안 검사장급만 돼도 인사권자만 무서워하지 뭘 해도 법적으로 처벌받으리란 생각도 안 한 것이 사실”이라며 “공수처가 최상위 권력층을 견제해 국민 지지를 받으면 그동안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웅석 회장은 “공수처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닌 고위공직자 부패 수사를 통해 국민 지지를 얻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추후 정권이 바뀔 때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1호 수사’를 시작으로 공수처가 국민의 신뢰를 받는 인권 수사기관으로 자리매김한다면, 검찰 견제는 물론, 검찰의 부당한 수사 관행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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