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의 하나인 고양이용 화장실 모래를 발명했다. 그가 아니었으면, 귀엽기만 하지 별 쓸모는 없고 기어이 모래에만 똥 싸는 털 덩어리 포유류와 결코 함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에드워드 로 재단’ 누리집 갈무리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뭘까? 이 질문을 보는 당신 머리에서는 수많은 인류 자산들이 떠오를 것이다. 문자, 숫자, 바퀴, 비행기 등등. 만약 당신이 아이를 키우는 아빠라면 일회용 기저귀야말로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답하고 싶을 것이다. 자취하는 학생이라면 전자레인지야말로 삶을 구원한 발명품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건 어쩌면 당신이 사는 장소의 위도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이를테면 작고한 싱가포르의 총리 리콴유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에어컨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매우 독재적으로 합리적이다. 에어컨은 열대 국가인 싱가포르에서도 사람들이 더위에 허덕이지 않고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물건이다. 리콴유에게는 이 굉장한 기계장치야말로 자신이 통제하던 작은 적도의 도시 국가를 산업화시킨 일등 공신이었을 것이다.
확실히 에어컨은 인류 문명을 한 단계 진화시킨 발명품이 맞다. 엔지니어 윌리스 캐리어가 1902년 발명한 에어컨은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미국 전역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 문명의 중심은 동부였다. 뉴욕이나 시카고, 필라델피아 같은 대도시들도 다 동부에 있었다. 크게 오르지도 크게 떨어지지도 않는 기후를 가진 서부의 캘리포니아 정도가 그에 비할 만했다. 에어컨이 발명되자 사람들은 마침내 남부를 재발견했다. 여름이면 찾아오는 엄청난 폭염 때문에 좀처럼 성장하지 않던 도시들에 에어컨이 달린 건물들이 생겨났다. 사람들이 모이자 휴스턴, 애틀랜타, 댈러스 같은 거대 도시들이 빠르게 성장했다. 싱가포르도 방콕도 두바이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적도의 도시에서도 슈트를 입고 일할 수 있게 됐다. 이건 열대의 인류에게는 혁명적인 일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젠 내 차례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뭘까? 나는 이 질문에 수많은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발명품은 방구석에 위치한 플라스틱 상자 속에 들어 있는 ‘고양이 화장실용 모래’다. 고양이 모래 따위가 어떻게 위대한 발명품일 수 있냐고? 곁에 있는 고양이 집사들에게 한번 물어보시라. 그들 역시 나와 같은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미리 말하자면 이 모래는 고양이라고 불리는 한 포유류 종의 운명을 바꾸어놓았다. 종을 다른 차원으로 진화시켰다고 말해도 지나친 과장은 아닐 것이다. 동시에 이 모래는 인간의 운명을 바꾸어놓았다.
고양이는 모래에 배변을 한다. 길고양이들은 도심 사이사이에 있는 화단을 화장실로 멋지게 사용할 것이다. 집 안에서 키우는 고양이들은 고양이용 화장실에 적당히 부어둔 고양이용 모래에 배변을 한다. 강아지처럼 가르칠 필요도 없다. 디엔에이(DNA)에 새겨져 있는 습성이다. 고양이라는 동물은 원래 이집트 지역에서 왔다. 그 시절 고양이는 배변을 한 뒤 항상 모래로 덮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야 천적이 배설물 냄새를 쉽게 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살고자 생긴 습관은 수만년이 흐르며 본능이 됐다. 그런데 그 본능은 반려동물로서의 고양이에게는 커다란 약점이었다. 고양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화장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반드시 해결해야만 한다.
당신은 개똥 냄새에는 익숙하지만 고양이 똥 냄새는 맡아본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오로지 육식만 하는 고양이의 똥은 냄새가 엄청나게 강하다. 고양이 소변 냄새와 비교하자면 개의 소변 냄새는 탈취제 향이나 마찬가지다. 사막 출신들이라 물을 개만큼 많이 마시지 않으니 소변의 농축 정도도 더 진하다. 그래서 고양이는 개만큼 빠르게 도시인들의 반려동물로 자리 잡지 못했다. 고양이란 동물은 자연에서 대소변을 해결할 수 있는 시골 동네에서나 키우는 반려동물이었다. 도시 사람들은 모래, 재, 혹은 톱밥을 이용해 어떻게든 이 골치 아프게 까탈스러운 화장실 본능을 가진 동물과 살아보려고 했다. 그럼에도 까다로운 뒤처리와 냄새는 반려동물로서 고양이가 가진 최대의 약점이었다. 육체적 아름다움과 사랑으로만은 극복할 수 없는 동거의 장벽이 세상에는 존재하게 마련이다.
에드워드 로는 1947년 최적의 고양이용 화장실 모래를 찾아냈다. 그는 새 상품을 창조하고 시장에 선보여, 하나의 산업을 만든 인물로 꼽힌다.
‘타이디캣’ 제품화 연매출 2억불
냄새·먼지 없는 뒤처리 흙이라니
인간은 확실히 어마어마한 존재
이런 족속들에게 팬데믹 따위는
먼 훗날 고양이들이 진화해서 자신들의 역사를 책으로 남긴다면 1947년이라는 해와 에드워드 로라는 이름은 반드시 기록될 것이다. 에드워드 로는 1920년에 태어난 위대한 미국인 발명가이자 사업가다. 그가 어떤 위대한 발명품을 만들었냐고? 고양이 화장실용 모래다. 그는 1947년 미시간주의 카소폴리스라는 소도시에서 아버지와 함께 작은 잡화상을 했다. 어느 날 드레이퍼 부인이라고 알려진 여성이 그를 찾아왔다. 부인은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다. 산책을 나가지 않는 집고양이였다. 드레이퍼 부인은 바깥에서 모래를 퍼서 고양이 화장실로 쓰고 있었는데 강력한 추위에 모래가 얼자 대신 먼지가 풀풀 날리는 재를 사용하는 중이었다. 그것마저 떨어지자 드레이퍼 부인은 에드워드 로의 가게에서 톱밥을 사려고 했다. 어떻게든 배설물을 뭔가에 덮어야 하는 고양이의 습성상 톱밥도 괜찮은 대안이었을 것이다.
에드워드 로는 톱밥을 팔지 않았다. 대신 그는 부인에게 ‘산성백토’(산성을 띤 하얀 흙·Fuller’s earth)라고 불리는, 곱게 말린 점토 광물을 건넸다. 로는 물이나 기름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톱밥보다는 말린 산성백토가 더 효과가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흡수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딱히 로가 고양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만 드레이퍼 부인은 크게 만족을 했다. 고양이가 이 모래에 대소변을 보자 진득한 대소변을 흡수하며 굳었다. 굳은 부분만 퍼내서 버리면 그만이었다. 소문은 금방 퍼져나갔다. 에드워드 로라는 사람이 파는 모래가 고양이 화장실용으로 딱이라는 소문이었다. 그는 거기서 사업의 가능성을 봤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개와 동등한 반려동물로 받아들이고 싶어 하던 시기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실내에서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 조건을 필요로 하게 될 터였다.
에드워드 로는 ‘키티 리터’(Kitty Litter)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후에 ‘벤토나이트 모래’라고 불리게 되는 고양이 화장실용 점토 모래의 시작이었다. 시작부터 모두가 이 마법의 모래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유통업자들은 그의 발명품을 구입하길 망설였다. 어디에나 있는 모래를 퍼서 쓰는 것이 훨씬 싸기 때문이었다. 로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전국을 돌며 직접 ‘키티 리터’ 모래를 팔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로의 마음처럼 움직였다.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며 화장실 문제로 골치를 앓던 사람들이 로의 모래를 구입한 뒤 동네의 모든 고양이 집사들에게 권했다. 1964년 에드워드 로는 대형 유통 업체에 자신의 발명품을 판매하기 위해 ‘타이디 캣’(Tidy Cat)이라는 브랜드를 출시했다. 그는 지난 1990년 연매출이 거의 2억달러(2216억원)에 달하던 회사를 매각했는데 오늘날 환율로 환산하면 4억달러에 이른다. 이제 사람들은 에드워드 로를 ‘새로운 상품을 창조하고, 시장에 선보이고, 하나의 산업 자체를 발명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교과서적 인물 중 하나로 평가한다.
나는 13년째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내가 고양이를 키울 수 있게 된 것은 이 혁신적으로 사랑스럽게 진화한 종이 너무 사랑스럽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 몇몇은 어쩌면 남편을 원하고 있을 테지만 설거지, 육아와 청소 능력이 진화하지 않은 남편을 집에 들이는 일은 꺼려할 것이다(올바른 선택이다!). 우연히 만난 길고양이를 집으로 덜컥 데려온 나의 결단도 마찬가지였다. 고양이 모래라는 발명품이 없었더라면 나는 고양이를 도심의 아파트에서 감히 키울 만한 대담한 선택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요즘 고양이 모래는 1947년 에드워드 로가 발명한 ‘키티 리터’보다 더 놀라워졌다. 고양이가 대소변을 보는 순간 모래는 거의 단단한 시멘트처럼 굳는다. 냄새까지 완벽하게 잡아준다. 이것은 정말이지 과학의 승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마르셀 모스는 “인간은 개를 가축화했다. 고양이는 인간을 가축화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걸 다시 말하자면 “인간은 개를 가축화했다. 인간은 고양이 모래를 발명함으로써 고양이의 가축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고 집에 머무르는 날이 많아지자 나는 더욱 이 모래의 놀라운 기능성에 감탄했다. 냄새도 나지 않았다. 먼지도 나지 않았다. 나는 단단하게 굳은 고양이 똥을 퍼내면서 생각했다. 인간은 확실히 굉장한 존재다.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계속해서 발명한다. 그리고 발명은 우리의 ‘과학적인 두뇌’와 강렬한 관계가 있다. 세상은 정치로 가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의 필요를 알아챈 몇몇 발명가와 과학자에 의해 움직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필요로부터 자본의 냄새를 맡은 기업들에 의해 움직이기도 한다. 몇년 전만 해도 나는 전기자동차가 이처럼 빠르게 상업화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때는 거대한 석유산업이 전기자동차의 대중화를 막을 것이라는 음모론도 썩 믿을 법해 보였다. 세상은 쓸모없는 음모론보다 항상 빠르게 진화한다.
팬데믹도 끝이 없어 보였다. 스페인 독감처럼 지구의 인구를 쥐어짜듯 줄이고야 끝날 것만 같았다. 인간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백신을 개발했다. 심지어 전에 존재하지 않던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을 만들어냈다. 기존 백신처럼 약한 세균을 우리 몸에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신체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단백질을 세포에 가르치는 방식이다. 사실 이건 나로서도 도저히 더 쉽게 설명을 할 수는 없다(과학이란 복잡한 것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인류 문명이 위기를 맞이하자 겨우 1년 만에 인류가 스스로 해결책을 내놓았다는 사실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건 결국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기 위해 벤토나이트 모래를 발명한 것과 그리 다른 일이 아니다. 기겁할 정도로 귀엽지만 사람 말을 좀처럼 듣지는 않는 소형 포유류 하나를 도시형 반려동물로 만들기 위해 화장실 모래를 발명한 족속들이라면 바이러스와 싸우는 방법도 당연히 발명할 것이다. 그건 과학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지만 인간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다.
인간이라는 종은 어떻게든 덜컹덜컹거리며 점점 옳은 방향으로 진화하는 희한한 존재다. 결국 우리는 화성에 사람을 보낼 것이다. 동물을 죽이지 않고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는 방법을 알아낼 것이다. 기후변화를 더디게 만들 산업혁명을 이룩할 것이다. 장애인들이 불편함 없이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낼 것이다. 성별이나 육체적 힘에 관계없이 중노동을 소화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할 것이다. 인간은 과학과 함께 진화하고 있다. 그 진화의 길에 이 귀엽기만 하지 별 쓸모는 없고 기어이 모래에만 똥을 싸는 털 덩어리 포유류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축복이다.
▶ 영화 잡지 <씨네21> 기자, 패션 잡지 <긱 매거진> 피처 디렉터, <허프포스트 코리아> 편집장을 했다. 17년간 써온 글 중 아끼는 것을 모아 2019년 첫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냈다. 사람·영화·도시·옷·물건·정치까지 관심 닿지 않는 곳이 드물다. 품격과 허영, 쓸모 있음과 없음, 옳음과 현실 사이 세심한 눈길로 읽어낸 인물평을 3주마다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