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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잔말 말고, 오십까지는 더 다녀”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등록 2021-05-02 09:11수정 2021-05-02 16:42

[토요판] 마흔에 은퇴
②마흔에 가지는 갭이어

2년 동안 다니려던 세계여행 접고
여행보다 은퇴 계획 더 중요해져

프리랜서 하자니 특별한 능력 필요
음식장사 하려면 아껴쓰라 하는데
자영업자 어려움 우리라고 다를까

행복해지려고 은퇴하고싶다 했지만
양가 부모님들 펄쩍 뛰며 걱정하고
어차피 원하시는대로만 살 순 없어
엄마와 2년에 한번은 모녀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는 늘 짧게 다녀올 수 있는 동남아였다. 사진은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 ‘타 프롬’에서 찍었다. 김다현 제공
엄마와 2년에 한번은 모녀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는 늘 짧게 다녀올 수 있는 동남아였다. 사진은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 ‘타 프롬’에서 찍었다. 김다현 제공

내가 다닌 회사는 3년을 근무하면 한달 안식휴가를 주었다. 우리는 세계여행 예행연습을 해보자며 한달을 꽉 채워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로 여행을 떠났다. 그때 우리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었다. 하지만 살아보듯 지냈던 그 한달 이후 ‘세계여행’이라는 타이틀에는 시큰둥해져 버렸다.

우리는 ‘2년에 걸친 세계여행’ 대신 ‘내킬 때마다 한달 여행’으로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여행’ 때문에 은퇴를 얘기했는데 어느덧 ‘여행’보다 ‘은퇴’가 더 중요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여행보다 회사에서 은퇴한 이후 생활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도 휴가가 필요하다

남편은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처럼 혼자 운영하는 작은 식당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즈음 은퇴 후 장사하다 망한 사람들 이야기, 우리나라에는 자영업자 비중이 너무 높다는 뉴스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전에는 그냥 넘겼던 기사들을 꼼꼼히 읽어보며 우리라고 다를까, 걱정이 되었다.

“여기 봐, 장사할 돈으로 차라리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아껴 쓰래….”

“우리가 남들보다 자신있게 잘하는 게 없으니 걱정이긴 해.”

집 근처 남편과 자주 찾던 주꾸미 집이 얼마 전 북카페로 바뀌었다. 오픈 이후 줄 서서 먹던 대만식 샌드위치 집도 지금은 약국이 되었다. 제대로 요리 한번 해본 적 없는 우리가 과연 음식 장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동안 막연히 회사에서 은퇴하면 장사를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어디서 나온 오만일까 싶다. 은퇴 후 돈 버는 방법에 대해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처음 한 생각은 프리랜서 기획자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은퇴를 결심했지만, 기획은 지금의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나 프리랜서 기획자로 계속 일하면 어떨까?”

“너 하고 싶으면 계속해. 근데 프리랜서로 기획할 거면 회사를 더 길게 다니는 게 낫지 않아?”

하지만 회사에서 더 오래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혔다. 난 기획자가 힘들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10년 넘게 해오고 있었다. 계속된 야근으로 건강을 잃은 지 오래고,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숨을 참는 버릇이 생겼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두통에서 이제 벗어나고 싶었다. 회사에서 은퇴하기로 결심 후 난, 힘들 때마다 “빨리 마흔이 되면 좋겠어!”라고 속으로 외쳤다. 문득 고등학교 졸업 이후 가진다는 갭이어(Gap Year)를 은퇴 이후 마흔에 보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재충전하라고 주었던 안식휴가처럼 내 인생에도 휴가가 필요했다.

회사에서 십여년 세월을 보내면서 난 어느덧 회사 일 말고는 잘하는 것 하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뭐 하나 잘하는 것 없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을까. 회사는 신입사원이 업무를 배우는 기간에도 월급을 주지만, 프리랜서라면 특별한 능력을 보여야 돈을 벌 수 있다.

“당신은 은퇴하면 무슨 일 하고 싶어?”

“가정주부?”

“그건 같이 하는 거고, 일 말이야.”

“작곡? 음원 저작권으로 돈을 버는 거지. 너는?”

“작가?”

우리가 은퇴 후 하고 싶은 일은 뜬금없었다. 전혀 해본 적 없는 작곡가에 작가라니, 둘 다 그다지 재능은 없어 보인다. 갭이어가 아니라 그냥 계속 놀자는 이야기 같다.

 부모님에게 이른 은퇴를 말하다

엄마는 내가 능력 있는 여성이 되기를 바랐다. 아빠는 내가 고등학생일 때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응급으로 진행된 첫 수술 후에도 아빠의 출혈은 계속되었다. 아빠는 그 큰 수술을 두번이나 해야 했고,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때 엄마는 전업주부였고, 언니와 나는 아직 학생이었다. 아빠가 누워있는 동안 우리 집에서 돈벌이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싼 병원비는 감당하기 어려웠고, 엄마는 아무것도 못 한 채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그때마다 엄마가 얘기했다.

“넌 엄마처럼 살지 마. 남편에 기대지 말고 너 스스로 능력 있는 사람이 돼.”

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연한 순서로 여기며 대학에 입학했다. 친척들은 “아빠가 아픈데, 대학이라니, 돈이나 벌지”라는 얘기를 했다. 하지만 엄마는 우리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아빠로 인해 우리가 희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병원비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난 4년 동안 학비 중 일부는 장학금을 받았고, 부족한 돈은 학자금 대출을 받아 학교를 다녔다.

엄마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우리 가족은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 시간을 괴로워하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가 아프니까 아기같이 귀여워”라고 말하며 아빠를 보살폈다. 우리 가족은 아빠가 살아 계신 것에 감사하며, 사랑하며 그렇게 그 시간을 보냈다.

언니와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둘 다 꽤 괜찮은 회사에 취직했다. 우리는 엄마의 바람을 이룬 듯 보였다. 엄마는 공부 대신 취직이나 하라고 말했던 친척들에게 보란 듯이 우리를 자랑했다. 그렇게 나를 자랑스러워했던 엄마에게 은퇴를 하겠다 말해야 했다.

난 늘 엄마가 바라는 대로 따랐다. 크게 엇나간 적이 없었기에 엄마는 내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알아서 잘하겠거니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난 은퇴를 생각한 지 오래지 않아 엄마에게 내 결심을 말했다. 처음 1, 2년은 시간이 지나면 내 생각이 변할 거라 생각하셨던 것 같다. 강하게 반대하지는 않으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자 그때부터 엄마의 걱정이 시작되었다.

“난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엄마, 나 더 행복해지려고 은퇴하는 거야.”

“사고 싶은 것도 돈 없어서 못 살 거 아니야.”

“필요한 건 다 샀어. 나 물건에 별로 욕심 없어.”

“네가 그 좋아하는 여행은 어떡해?”

“여행 다닐 돈은 다 모으고 은퇴할 거야. 은퇴하면 여행 더 잘 다니지.”

“아프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회사 더 다니다 병날 거 같아. 엄마, 나 요즘 회사에서 숨도 못 쉬겠어.”

다양한 변수에 대해 남편과 자주 대화를 주고받아서일까, 은퇴에 대한 어떤 의문에도 대답할 준비는 되어 있었다. 엄마의 물음에 준비되지 않은 대답은 없었다. 그래도 틈만 나면 엄마는 조금만 더 다니라고 나를 설득하려 하셨다. 오랜 시간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건 세뇌 효과가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는 나의 은퇴를 받아들이시는 모양이다.

엄마와 2년에 한번은 모녀 여행을 떠났다. 언니와 휴가 날짜를 맞추고, 함께 여행지를 정했다. 둘이 휴가 날짜를 맞추기가 어려워 여행지는 늘 짧게 다녀올 수 있는 동남아였다. 엄마는 늘 이 여행을 기대하셨다. 주변에 은근 자랑도 하신다.

“너 은퇴하면 돈 없으니, 이제 모녀 여행은 언니랑만 가야 하나?”

“엄마랑 모녀 여행 다닐 돈은 내 비자금으로 마련해놨어.”

드디어 엄마가 인정하신 듯하다. 모녀 여행 가야 하니 은퇴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넌 이제 돈 없어서 못 가지’라고 약을 올리려 하셨다.

시가에는 남편이 말했다. 남편은 나처럼 사전 준비가 없었다. 어느 주말, 어머님이 집에 와서 점심 먹고 반찬 좀 가져가라고 할 때를 노렸다. 점심을 끝내고 후식을 먹고 있을 때였다.

“엄마, 나 곧 회사 그만둘 거야.”

“갑자기 왜, 회사에서 뭐라고 그래?”

남편은 차분히 은퇴 계획을 말씀드렸다. 우리 계획을 다 들으신 어머님은 말씀하셨다.

“잔말 말고, 오십까지는 더 다녀. 너 모은 돈 그거 쓰는 거 순식간이야.”

그 이후 시댁에 찾아갈 때마다 은퇴 계획을 이야기했지만, 어머님은 계속 우리를 설득하려 하셨다. 하지만 남편은 원래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아들은 아니었다.

“나 그만둔다고 회사에 얘기했어.”

그냥 저지르는 것이 남편의 방식이었다. 어머님은 곧 익숙한 듯 포기하셨다.

부모님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실 만하다. 모두가 정년퇴직까지 회사에 있길 바라고,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위해 공무원이 되는 걸 꿈꾸는 시대다. 그런데 멀쩡한 직장을 다니는 자식이 그만두겠다 한다. 걱정되시는 게 당연했다. 내가 어떤 준비된 대답을 해도 그 마음이 쉽게 달라지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계속 살아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은퇴를 위한 준비는 되어 있다. 내가 말하는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은퇴 후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달라지지 않으실까. 김다현 작가

▶20~30대에 열심히 돈을 모아 자립하는 조기은퇴자를 ‘파이어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경제적 독립, 조기은퇴)이라고 한다. 극단적인 절약과 재테크로 악착같이 돈을 모은 초기 파이어족들과 달리 최근엔 현실적인 돈 모으기와 생활비 계산으로 조기은퇴를 실천하는 것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아이티 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조기은퇴한 부부의 경험담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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