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4일 ‘공소권 유보부 이첩’ 조항이 담긴 사건사무규칙을 제정 및 공포했다. 공수처가 다른 수사기관에 사건을 이첩했을 때도 최종 공소제기 판단 권한이 공수처에 있다는 내용인데, 법 개정 없이 규칙으로 이런 조항을 두는 것 자체가 ‘초법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 등 다른 수사기관의 반발도 예상된다.
공수처가 이날 제정 및 공포한 사건사무규칙은 총 35조로 구성돼 있으며, 사건 접수와 수사 및 처리, 공판수행 등 사건사무처리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특히 공수처는 ‘공소권 유보부 이첩’ 조항을 통해 “수사처가 다른 수사기관에 사건을 이첩하면서 (향후) 수사처가 공소제기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수사기관 수사 완료 뒤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해놓았다. 고위공직자 범죄의 경우, 수사를 위해 검·경 등에 사건을 이첩한 뒤에도 공소권이 여전히 공수처에 남아있어 기소 여부를 공수처가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공수처는 “규칙 제정 과정에서 공수처법 해석 및 적용 관련 검·경과 실무협의를 거친 뒤 해경·군검찰 등 타 수사기관 의견을 수렴했고 관련 내용에 대해 공수처 자문위 전문가 논의를 거쳐 규칙을 마련했다”라며 ‘공소권 유보부 이첩’에 대해서도 “사건의 이첩 또는 이첩 요청과 관련된 기준, 절차 등을 마련해 사건 이첩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제고하고 수사 공정성을 담보하겠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공수처 사건사무규칙 제정안은 초법적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선언이자, ‘형사소송절차 법정주의’에 전적으로 위배되는 내용이어서 다른 기관들은 공수처의 ‘유보부 이첩안’에 응하면 안 된다”라며 “다른 수사기관이 이를 받아들일 경우, 공수처를 상위 기관으로 인정하는 셈이다. 유보부 이첩 권한을 공수처가 가지려면 공수처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다른 수사기관들도 즉각적으로 반응을 내놓지 않았지만, 내부 논의를 거쳐 반대 의견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대검은 ‘검찰에 이첩한 사건이면 공수처 내부규칙으로는 공수처가 기소권을 갖도록 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공수처에 보낸 바 있다. 수원지검도 지난달 ‘김학의 전 차관 불법출금 의혹’ 사건 과정에서도 공수처의 재이첩 요청을 사실상 무시하고, 이규원 검사를 직접 기소한 바 있다.
사건사무규칙 효력에 관한 의구심도 나온다. 이번 규칙을 제정하며 공수처는 “사건사무규칙은 공수처법 아래에 있고 대통령령에 준하는 효력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규칙 제정만으론 다른 수사기관에 효력을 미칠 수 없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양홍석 변호사는 “대통령령에 준한다고 하더라도 규칙 제정만으로 다른 수사기관에 강요할 순 없다. 효력은 공수처 내에 국한된다”고 설명했다. 공수처도 이를 의식한 듯 “사건사무규칙 해석과 적용 관련된 혼선이 발생할 수 있음에 따라 향후에도 공수처, 검찰, 경찰청 등 구성된 수사기관 간 협의체를 통한 논의를 지속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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