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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축하는커녕 난민심사 걱정…4개월 된 이집트 아기난민 ‘아산’

등록 2021-05-06 04:59수정 2021-05-07 19:31

이집트 모나 부부, 군부 박해로
4년 전 어린 딸과 한국으로 망명
가족 소명에도 재차 ‘난민불허’
한국, 지난해 난민 인정 0.4%뿐

2021년생 아산, 심사 탈락하면
출생신고도 못한채 ‘미등록체류’
어린이날, 닫힌 출입국관리소 앞
결과 기다리는 엄마 품서 웃기만
아산이 지난 3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집에서 엄마 압둘라드 모나의 품에 안겨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아산의 부모는 이집트 군부독재 정권의 박해를 피해 2017 년 한국으로 온 ‘난민신청자’로 아산도 현재 난민 지위 인정을 기다리고 있다. 동두천/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아산이 지난 3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집에서 엄마 압둘라드 모나의 품에 안겨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아산의 부모는 이집트 군부독재 정권의 박해를 피해 2017 년 한국으로 온 ‘난민신청자’로 아산도 현재 난민 지위 인정을 기다리고 있다. 동두천/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엄마 품에 안긴 아기는 날선 질문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왜 난민지위를 인정받고 싶은가?” “한국에서의 계획은 무엇인가?” “부모가 이집트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가?” 세상에 온지 116일째 된 아기는 낯가림이 없었다. 낯선 이의 말에 ‘방긋’ 웃음을 지어보였다. 지난달 26일 경기도 양주 출입국관리소에서 난민심사를 담당하는 직원은 아산이 알아들을 수 없는 질문을 이어갔다. 아산을 품에 안고 출입국관리소를 찾은 엄마 압둘라드 모나(32)는 이 상황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아무 말 못하는 어린 아이에게 난민심사를 한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지난 3일 만난 모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산의 부모는 이집트 군부독재 정권의 박해를 피해 2017년 한국으로 온 ‘난민신청자’다. 모나 부부는 2021년 새해 첫날 태어난 아산에게만큼은 난민신청자 신분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본국에서 박해를 피해 한국으로 망명한터라 주한 이집트 대사관을 찾아 출생신고를 할수도 없었고, 한국에서 출생신고를 할수도 없었다. ‘미등록체류’ 상태로 석달을 살았던 아산은 난민신청서를 낸 뒤에야 외국인등록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보통 아동들이 생후 1∼2개월에 맞는 예방접종 주사도 아산은 외국인등록증을 받은 뒤에야 맞을 수 있었다.

아산의 부모와 네살배기 누나 비잔은 모두 난민신청을 했지만 출입국관리소가 불허 판단을 내렸다. 이집트에서 의과대학을 다녔던 엄마는 중동지역에 민주화 바람이 불었던 2011년부터 이후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분쟁 지역 티란·사나피르섬에 ‘이집트의 빛’이라는 비정부기구를 세워 섬 주민들을 위한 의료 지원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을 축출하고 2013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압델 파타 엘시시가 정부 반대 세력을 탄압하고 2016년께 두 섬의 관할권을 사우디에 양도하면서 모나의 삶도 급격하게 불안해졌다. “수많은 친구들이 체포되고 죽임을 당했다. 정부 뜻에 반대하고 주민 편에 섰던 나는 이집트에서 안전할 수 없었기에 한국으로 왔고, 돌아가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한국에 온지 5개월만에 고국에서 둘째 오빠가 고문 끝에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하지만 한국은 모나의 난민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출입국관리소는 “이미 이집트 국회가 티란 섬과 사나피르 섬의 관할권 양도를 승인하는 등 이 문제가 일단락됐다. 모나가 새롭게 박해 위협을 받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난민 신청을 기각했다. 모나는 둘째 오빠의 사망을 입증할 사망진단서 사본도 어렵게 구해 제출했지만, 출입국관리소는 “정부 기관에서 발행한 (둘째 오빠의) 사망 관련 증명서엔 ‘당국의 고문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이 있어 이집트 정부가 의도적으로 사건을 은폐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박해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면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수 없고, 증거를 제출하면 증거가 있으므로 박해로 보기 어렵다는 모순된 논리 앞에 모나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모나 부부와 비잔은 ‘난민불인정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심사 결과가 뒤바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0.4%에 불과하다. 난민지위를 신청한 이집트인은 718명이었지만, 이들 가운데 난민지위를 받은 이는 단 10명 뿐이다.

난민심사 결과를 낙관하기 힘든 건 아산도 마찬가지다. 난민인권센터가 공개한 통계자료를 보면 2019년 한해 동안 아산과 같은 4살 이하 어린이 251명이 난민지위를 신청했지만 16명 만이 난민인정을 받았고, 25명은 인도적체류 허가를 받았다. 나머지 210명의 아이들은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서류상 없는 아이들로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한다.

아산이 난민심사에서 탈락하면 결국 ‘미등록체류’ 아동으로 한국사회에서 그림자처럼 살아가야 한다. 한국은 유엔 아동권리협약 비준국가지만 ’보편적 출생등록제’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2019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대해 ‘부모의 법적 지위 또는 출신지와 관계 없이 모든 아동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촉구했고, 법무부는 지난 2월 출생등록제 신속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시행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모나 부부는 난민 신청 행정소송에서 최종 패소하면 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비자도 만료돼 당장의 생계도 막힌다. 모나의 남편은 일용직으로 일하던 중 허리 디스크가 생겨 일을 쉬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는 국내 구호 단체의 지원을 받아 비잔을 유치원에 보내고 간신히 일상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모나는 “우리 부부의 생계는 큰 문제가 아니다. 비잔과 아산의 안전과 행복이 제일 중요하다”고 호소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전문가들은 기본 인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애란 한국이주민건강협회 희망의친구들 사무처장은 “난민 지위를 얻기까지 난민신청자는 적극적인 외부 노출을 두려워하고 지역사회와의 교류도 별로 없어 심각한 정보결핍 상황에 놓이는데, 부모가 고립되면 아이는 더욱 고립될 수밖에 없다”며 “자라나는 아이는 시기에 맞는 적절한 교육, 의료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난민신청자의 아동은 훨씬 취약한 상태에 놓여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어린이날인 5일,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가까운 공원으로, 야외로 놀러 나갈때 아산은 엄마의 품에 안겨 출입국관리소를 찾았다. 전날 ‘난민신청 심사결과’를 확인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난민심사 결과발표를 앞두고 초조해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모나는 아침부터 안산을 안고 비잔의 손을 잡고 경기 동두천 집에서 양주까지 갔다. 하지만 휴일인 탓에 출입국관리소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모나는 “지금은 모든 게 닫혀있는 기분이다. 출입국관리소와 싸우고, 법원을 가야하는 게 일상의 전부”라고 체념하듯 말했다. 그런 엄마 품에서 아산은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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