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월 말 취임 뒤 대전현충원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법무부 제공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오는 7일 취임 100일을 맞는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퇴로 법무부와 검찰 갈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새 검찰총장 인선 뒤 검찰 인사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 등 청와대와 여권을 겨냥한 수사 과정에서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다. 검찰 반발을 최소화하며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완수하는 동시에, 수사 관행 등과 관련한 제도를 정비해 검찰의 인권수사와 중립성 등을 회복시키는 일이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은 지난 1월21일 취임사를 통해 소통과 올바른 검찰권 행사를 강조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수사와 월성 원전 수사 등으로 검찰에 대한 정부·여당의 반감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먼지털기식’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소통을 통해 현안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메시지였다.
실제로 앞서 ‘추미애-윤석열 갈등’을 의식한 듯 거칠게 검찰과 대립하는 일을 피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팀 모해위증 교사 의혹 사건’ 처리 과정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일이 대표적이다. 박 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면서도 검찰이 무혐의 처분한 이 사건을 대검찰청 부장회의를 통해 다시 심의하라는 다소 온건한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갈등이 불붙을 가능성은 여전하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검사는 “윤 전 총장이 사퇴하고 재보궐선거를 치르면서 자연스럽게 갈등이 수그러들었을 뿐, 박 장관의 능력으로 갈등이 줄어든 건 아니다”라며 “‘코드인사’라는 비판이 이는 새 총장 인선 뒤, 불공정한 검찰 인사가 단행되면 더 큰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직 검사들은 김오수 검찰총장 취임 뒤 예정된 ‘대규모 인사’가 법무-검찰 관계의 새국면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 장관은 취임 보름만인 지난 2월 초 검찰 고위직 인사 과정에서 이른바 ‘총장 패싱 논란’이 제기되면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추미애 장관 시절 줄세우기식 인사 때문에 정치권력 수사를 하면 지방으로 좌천된다는 나쁜 전례가 남았다”며 “이번 인사에서 어떤 공정한 기준을 가지고 비정상적인 인사를 정상화할 수 있을지가 (관계 회복의) 중요한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박 장관이 앞으로 검찰개혁의 목표와 청사진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을 대표되는 1단계 검찰개혁이 완료된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남은 검찰개혁 목표가 모호하다는 이유에서다.
한 원로 변호사는 “박 장관이 생각하는 검찰개혁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여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을 위한 수사-기소권 완전분리인지,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안착인지, 검찰 권력의 합리적 통제인지, 의미가 모호하고 뚜렷한 대책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공수처가 시행착오를 겪는 것처럼 새 제도의 정착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수밖에 없는데, 박 장관이 정부·여당의 눈치를 보며 ‘중대범죄수사청’과 ‘기소청’ 설치 같은 설익은 제안에 아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첩사건 기소권 등을 두고 연일 갈등을 빚는 공수처와 검찰을 중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공수처가 독립된 수사기구여서 장관이 관련 의견 등을 적극적으로 내지 못하는 상황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면서도 “검찰과 공수처가 힘겨루기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정부와 법무부가 손 놓고만 있으면 공수처는 검찰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적극적인 중재역할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을 찾아 종교시설 등 코로나19 방역 관련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법무부 제공
박 장관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전·현직 검사들은 ‘검찰의 독립성 회복’을 꼽았다. 일부 검사들은 “지금 살아있는 권력을 공정하게 수사 할 수 있는 분위기인가”라고 반문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정치권력의 불법행위를 엄중하게 수사하는 게 검찰권의 핵심인데, 박 장관 취임 뒤에도 ‘검찰의 독립성’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 관련 피의사실 공표 문제 제기와 한명숙 위증교사 의혹 관련 감찰 지시를 꼽았다. 한 부장검사는 “이명박, 박근혜 전직 대통령 수사 때와 김학의 사건 수사에서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다른 잣대가 적용되면 안 된다”며 “정치적 해석이 첨예할 수 있는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을 콕 찍어 감찰을 지시한 건 이미 정치적 판단이 관여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에서는 사건에 따라 중립성 시비가 일 수 있는 피의사실공표 문제보다는 공개된 공보 프로세스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의사실공표에 대한 장관의 문제 제기가 검찰 수사 과정의 폐쇄성을 키우는 건 아닌지 되짚어봐야 한다”며 “검찰 기소 전에도 공개브리핑을 통해 언론과 국민이 수사 과정을 견제할 수 있는 공보프로세스를 갖추는 것도 시급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 “인권증진 위한 제도 정비에도 노력 기울여야”
법조인들은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 등의 인권증진을 위한 법률행정 정비에서 박 장관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박 장관은 서울동부구치소 방문을 시작으로 외국인 고용시설 등을 방문하며 현장 소통 행보를 이어가고 있지만, 보여주기식 행보를 넘어 내실 있는 정책의 제안이 필요한 때라고 입을 모았다. 한상희 교수는 “법무부 현안이 검찰개혁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사회적 약자와 이주민 등의 인권증진을 위한 법률을 정비하고 제안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며 “국가인권위위원회까지 권고한 차별금지법 제정 등 산적한 법무 현안들에 뚜렷한 메시지를 던지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 앞으로 이런 문제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옥기원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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